우아한 루저의 나라 - 독일인 3인, 대한제국을 답사하다
고혜련 지음 / 정은문고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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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서구 유럽의 개항요구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고종은 해관과 외교에 능통한 자문관이 필요하였다. 고종은 청의 리홍장에게 자문하였고, 리홍장은 그와 친분이 있던 독일인 묄렌도르프 (한국이름은 목인덕) 를 추천하였다.  (-35-)


1897년 가을 제물포에 지점을 둔 독일 회사 세창양행은 조선에 있는 거의 유일한 유럽계 회사였습니다. 이들은 조선 정부와 지하자원을 탐사할 수 있는 권리와 특정 광물을 채취할 수 있는 지역을 점유하고 그곳에서 생산 활동을 할 수 있는 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따라서 당연히 금과을 찾앙 했습니다. (-83-)


당시 독일인의 원대한 꿈은 조선에 금광 펀드를 결성함으로써 강원도 금성 당고개 광산 지역이 동아시아에 있는 또하나의 독일 무역 중심 도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프로젝트였다. 게다가 조선인들은 채금을 한 후에 더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해 금을 밀수했다고 독일리은 주장했다. (-166-)


예쎈은 1913년 완성된 부관연락선을 이용하였다. 시모노세키 항구에서 스코틀랜드 병원선으로 사용했던 증기선을 개조한 연락선에 승선하여 쓰시마를 지나 부산 잔교역에 도착하였다. (-239-)


그가 조선을 세 차례 탐사하면서 경험한 ,낡고 파괴된 조선의 건축물들은 이웃 국가들의 침략전쟁 때문이 아니라 조선의 민중봉기 때문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렇다면 수줍고 평화를 사랑하고 순종적이라 평가를 받는 흰옷을 입은 조선인은 파괴적인 면도 갖고 있다는 뜻인가? 


크노헨하우어의 조선인에 대한 시선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가 경험한 고을현감은 평상시의 근엄한 얼굴과 식사 초대에서 보여준 천진난만한 웃음의 양면성이 그것이다. (-301-)


10여 년전 예능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라는 프로그램에서 게스트로 출연한 출연자가 '루저'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사회적 지탄과 공분을 살았던 적이 있다.방송상 '루저'라는 말은 쓰여져서는 안되는 것이었고, 맥락상 문제가 되는 단어이자 개념이기도 하다. 즉 루저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정확하게 쓰여져야 하며, 자칫 문제의 소지가 생길 수 있다.


이 책을 본다면, 루저는 다른 의미로 쓰여지고 있다. 100년전 조선이라는 나라는 고종임금을 거치고, 순종임금이 있었던 대한제국이라는 낯선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거치고, 조선의 부산항구에 증기선이 들어오게 된다. 즉 무역항으로서, 부산항의 중요한 역할이 대두되었다. 한편 자주국가를 외치고 있었지만, 스스로 외세의 열강에 밀려 외교적인 박탈을 몸으로 느껴야 하는 상황에서 독일인 크노헹하우어와 겐테가 대한제국에 들어왔으며, 청나라 리홍장의 역할이 컷다고 책에는 말하고 있다.


즉 조선인에 대한 외국 열가으이 시선을 관찰한다면, 낯선 조선인이 느껴지고 있다. 조선은 파괴적인 모습과 순종적인 모습,이 두가지 양면성을 독일인은 직접 보았고, 양반, 선비로 불리는 조선 후기에 살았던 우리의 조상의 모습을 면밀하게 관찰하게 된다. 역사적인 이해 뿐만 아니라 사실적임 묘사가 이 책에 기록되어 있었으며,기술적으로 바닥이었던 조선땅에 온전히 자원만 남아있었던 그 시대의 우리의 모습을 하나하나 알게 된다. 지금도 여전히 100년전 우리 민족의 민족성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양면성이라 하지만,지금 우리는 그것을 역동성이라 말하고 있다.상황에 따라 뜨거운 열정으로 한국인의 긍지와 자긍신을 가지고 있고, 나라가 외세의 압박에 의해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의 마음으로 말을 잘 듣는 순종적인 모습도 느껴진다. 즉 독일인이 봤던 그 모습이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있다는 사실과, 그들이 봤던 조선이라는 나라의 생경함도 하나 하나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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