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슬퍼서 아름다운 것들 - 한 글자로 시작된 사유, 서정, 문장
고향갑 지음 / 파람북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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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일순이'와 함께 숲길을 걸었습니다. 일순이는 이웃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입니다.'키운다'리고 해서 도시에서 키우는 강아지로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사료 대신 밥을 먹는 일순이는 목줄에 묶인 적이 없습니다. 똥도 오줌도 가리지 않고 아무 데나 쌉니다. 제가 사는 집 마당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러든 말든 일순이가 예쁜 것은 '개냐이' 때문입니다. 개냥이는 일순이와 함께 자란 고양이인데 새끼를 낳다 죽었습니다. 그러자, 한 번도 새끼를 밴적 없는 일순이의 젖이 불었습니다. 그리곤 죽은 개냥이를 대신해서 새끼 고양이들에게 젖을 물렀습니다. (-13-)


아버지느 내 생일날 아침에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시기엔 너무 아까운 나이였습니다. 젊은 시절의 아버지는 손가락으로 내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며 활짝 웃곤 하였습니다.그때, 내 머리에 닿던 아버지의 손가락 감촉을 잊을 수 없습니다. 당신의 손가락에 묻어있던 담배 냄새를 지금도 기억합니다.'신탄진'이었던가요.'파고다'였던가요. 담배 심부름을 할 때마다 아버지는 내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며 활짝 웃었습니다. 나도 아버지를 따라 내 아이들의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곤 합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내 아이들도 기억해줄까요. (-82-)


허리를 굽히지 않는다.구부려 조아리느니 부러지고 만다. 땡볕을 버티고 바람을 견뎌서일까. 국수는 흙 같고 풀 같고 나무 같다. 반듯한 일직선의 메마름, 국수가 품은 한 방향의 나아감에는 그 어떤 타협도 없다. 땀과 시간으로만 빚을 수 있는 반듯한 눈물이라서 ,잘 말린 국수에 코를 대면 가을걷이를 마친 들녘의 흙냄새가 난다. 흙으로 돌아간 아비의 담배 냄새와 하얗게 시든 어미의 머리카락 냄새가 난다. (-178-)


떨어졌다. 목숨 하나가 또 떨어졌다. 전옥주가 죽었다. 일흔한 살의 나이였다. 이것으로 전옥주는 완전히 죽었다. 완전한 죽음으로 세상엣허 지워질 때까지, 전옥주는 수도 없이 여러번 반복해서 죽었다. 처음 전옥주가 죽은 것은 1980년 5월 광주였다. 전두환이 이끄는 공수부대가 광주시미의 머리와 몫과 가슴에 총구멍을 겨눌 때, 전옥주는 가두 방송을 하며 계엄군의 학살에 맞섰다. 그것이 전옥주가 죽어야 할 이유였다. (-211-)


저자 고향갑은 79개의 한글자를 주제로 한 권의 첵을 엮어낸다. 대학을 중퇴하고, 글을 쓰는 ,노동자의 보편적인 삶을 살게 된다. 노동야학에 참여하였으며, 전태일 50주기 특별 다큐멘터리를 완성하게 된다. 삶의 근원적인 물음 저 너머에 숨어있는 인간의 노동의 가치에 대해서 ,노동은 어떻게 민주화의 상징, 표상이 되었으며, 스스로 일어설 수 있었는가에 대해 물어보고 있었다.주어진 삶에 대한 이해, 79개 한 단어는 79개의 삶과 죽음이며, 79개의 인생의 화두이기도 하다.


인간에게 죽음만큼 강렬한 경험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누군가의 죽음 뿐만 아니라, 수많은 생명에게서 죽음을 경험하고,거기서 교훈을 얻으려 한다. 누군가의 분신에 대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인간의 움직임을 자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이 죽음에서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면서, 그 안에서 경외심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내 삶에 깃든 나의 인생,그 인생에서 저자는 자신의 명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였으며, 인간은 반드시 흙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놓치지 않는다. 가족 중 누군가의 죽음, 기일이 생일과 겹쳐지면, 상당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하지만 인간은 스스로 삶과 죽음을 정리한다. 삶에도 의미를 부여하지만, 죽음에도 의미를 부여한다는 걸 놓치지 않았다. 생의 끝자락에 죽음이 있지만, 생사 사를 같은 시간에 동일선상에 놓임으로서, 해마다 찾아오는 그 날짜에 꼭 애도만 하지 말것이며, 즐거운 마음으로 기일을 맞이할 것에 대해 스스로 상상하게 된다. 즉 죽음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깊은 지혜와 통찰력을 얻게 도와준다. 인간 뿐만 아니라 수맣은 생명에서 죽음 그 순간에 보이지 않는 틈새, 생명의 보편적인 가치와 의미를 스스로 느끼게 된다면, 삶에 겸손이 자연스럽게 깃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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