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비전과 마일스톤 - 글로벌 교육을 위한 아메리칸 드림의 성취
손영환 지음 / 행복에너지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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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법을 제정하여 사회를 정화하고 싶다는 충동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생들과 함께 국회의원 당선 가능성을 타진한 결과 자신감이 생겼다. (-53-)


1968년에 나는 학생으로 미국에 왔다. 그 이후로 하나님은 내가 성공적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international Computer & Telecom,Inc (Ict)를 성공적으로 설립, 운영하고,리더십과 경영 분야에서 광범위한 기업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인도하셨다. (-157-)


IGU는 미국 내에서 사는 미국시민 및 영주권 소지자들 뿐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및 중남미에 있는 50개 이상의 다른 국가에서 온 국제 학생들이 입학하여 졸업하고 있다. (-200-)


"세계선교침례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세계의 땅끝까지 전파하라는 말씀을 실천하는 교회입니다. 참 생명이며 구원자 되신즈 예수님을 세계만방에 선포하는 사명을 함께 하시기를 소원합니다." (-263-)


<내 인생의 비전과 마일스톤> 을 읽으면, 경영학 박사 및 교수인 손영환 박사의 삶의 이정표를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인생을 연결시키고 있으며, 삶에 대한 남다른 비전을 제시하며, 내 인생의 비전을 확립하게 되면서,. 새로운 길을 떠나게 된다. 1968년 30대 미국으로 건너간 손영환은 그곳에서 미국 육군 통신학교에서 배움을 추구하게 되다. 후진국 한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면서 영어에 대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미국 육군 통신학교에서 습득한 배움을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미국인과 경쟁할 수 있는 역량으로 삼게 된다. 미국에 건너오면서,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이 기록됟어 있었으며, 김목자 약사와 결혼하며,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시키게 된다. 아메리칸 드림의 궁극적인 삶의 목적이 분명하였고, 자신의 체험하였던 삶의 연결을 미국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중요가치로 삼고 있다. 아내를 바라보는 시선 나의 'Personal and Professional Partner' 로서 최선을 다해 배려하고 존중하고 있다. 처음 F-1 학생으로서 New Jersey 에 도착하여, Monmouth College에 입학하게 된다. 그곳에서 미국 컴퓨터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자신이 1956년 배웠던 미국 주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쓰여진 FORTRAN 프로그래밍 사용이 큰 도움이 되었다.장학금을 받아서 다니면서, 1970년 큰 아들을 낳게 된다. 3년 뒤,1973년 태어난 아이는 진석으로 짓게 된다.더 나아가 자신이 겪었던 50년간의 미국 사회 생활을 바탕으로 ,미국에 이만해 오는 미국 한인들이 미국 사회에 정착하도록, 물심양면 신경쓰고 있었다.미국의 문화와 사회에 적응하면서, 한국의 문화와 가치관,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한신사회의 공동체의 마일스톤에 집중하고자하였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스스로 걸어가면서, 하나님이 자신을 미국으로 보낸 그 사명감에 충실하고자 한다.한인 1세대로 자신이 살아온 삶의 궁극적인 목적, 한인 사회의 구심점이 되기 위해 힘써왔으며,새로운 가치를 적극 만들어냈다. 그 과정에서 미국 사회에서 한국계 미국인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이 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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