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반려일기 - 펫로스에서 벗어나 다시 시작하는 너와의 사계절
도란 지음 / 설렘(SEOLREM) / 202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여름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데는 1초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여름이를 따라 차도에 뛰어들었지만 나는 살아남았다. 여름이를 들어 올렸을 땐 이미 사후강직이 시작되고 있었다. 자동차 경적이 귓가에 왱왱 울려왔다.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뻣뻣해지는 여름이를 안고 집앞 동물병원으로 달렸다. 내 다리가 이렇게 무거웠던가. 이토록 느렸던가. 현실 속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찾아온 인생 최대 사고였다. (-15-)


배변 훈련은 계속 이어졌다. 모카는 열에 한 번 쯤 배변판에 볼일을 봤고, 아홉은 바닥에 쏟아냈다. 그걸 치우는 내 손은 나무껍질처럼 거칠어졌다. 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으니 꾹꾹 참았다. 바닥이 새까맣게 썩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며 계속 치우고 닦고, 우연히 배변이 잘 되면 칭찬해주고 간식을 먹이며 모카가 제발 생리작용에 관한 이 단순한 인과를 깨닫기를 빌고 또 빌었다. (-63-)


그랬던 인스타그램에 일상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 모카 사진을 자주 올리게 되면서 약간의 변화를 꾀하게 됐다. 강아지 사진으로 뒤덮이는 걸 기존 팔로워들이 좋아할 것 같지 않았고, 반려동물을 위한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 사용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우연히 알게 돼서였다. (-115-)


모든 선택에 비용과 결과, 소요시간을 따지던 내가 조건과 숫자를 지워버린 채 모카의 행복만을 추구하며 밟아온 과정은 생에 손꼽히는 순수한 노력이었다. 조건보다 중요한 것이 세상에 너무나 많다는 당연한 진실을 뼈저리게 배운 나날이기도 했다. 언제나 사랑은 주는 만큼 받고 싶은 거라고, 주기만 해서 괜찮은 사랑의 얼마만큼은 허세라고 주장하던 나는 이 일을 계기로 꼿꼿했던 사령관의 일부를 덧칠해야만 했다. (-156-)


"언니, 나는 별이 떠나보내고 다음 날 바로 별이 물건 전부 치웠어. 별이 물건만 보면 울 것 같은데 내가 우울해하면 둥희도 우울할 까봐. 가끔 울컥하지만 잘 참아내고 있어."
이 말을 하면서 동생은 눈물을 반짝 비쳤다. (-174-)


삶과 사(죽음)는 연결된다. 인간과 동물의 삶도 연결되고 있다. 오로지 안간은 혼자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항상 사물과 생물에 얽혀 살아가고 있다. 자유를 꿈꾸면서, 자유롭지 못한 족쇄를 스스로 채우며 살아가고,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인정 욕구와 긍정 욕구를 통해 내 삶을 행복과 만족으로 채우고 싶어진다. 그 행복과 만족의 하나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이다.그 중 강아지와 고양이를 키우는 것이 대부분 우리의 삶이 된다.


한 권의 책, 이 책에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주인공이자 저자의 삶을 언급하고 있다. 인간과의 조건적인 이해관계가 아닌 하염없이 베푸는 조건없는 관계가 나와 반려동물의 관계이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의 슬픔과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다. 반려동물 여름이, 교통사고로 인해 사후강직을 눈앞에 보았고, 살려주지 못한 죄책감에 사로 잡히게 된다. 펫로스, 자신이 키우던 소중한 존재가 눈앞에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는 건 자신의 삶에 있어서 하나의 삶의 근원적인 트라우마였다. 기억을 지우고 싶지 않은 그 마음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아져 있으며, 새로운 반려동물 모카를 키우면서 ,여름이를 온전히 그리워하고 있었다. 삶과 죽음 , 내 삶과 내가 키우는 반려동물의 삶은 서로 접점을 이루는 시간이 10년 남짓에 불과하다. 노령견이 되어, 털이 빠지고, 피부질환이 나타나고, 걸음걸음이 느려지는 그 모습을 지켜본다는 건, 상처이며, 정에 대한 값어치였다. 살아가고, 존재하는 것, 생명에 대한 가치를 이 책을 통해 작가의 마음 씀씀이 속에 채워지고 있다. 반려동물 인구 1천만 시대, 색안경을 끼고 보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좀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함께 살아갈 수 있는 인간과 반려동물에 대한 배려와 존중, 예의에 대해서 사려깊은 이해를 요구하고 있으며,내 주변에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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