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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생의 마지막 도전 - 황혼이 깃든 예술가의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 분투기
윌리엄 E. 월리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21년 12월
평점 :
미켈란젤로는 <모세>와 함께 살았다. 그 둘은 함께 늙어갔다. 매일 아침 예술가는 눈을 뜨면 석상을 보았다. 그가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오면 그 거대한 석상이 주인을 맞이했다. 그 석상과 함께 사는 것은 어쩌면 불평했을 것이다. 석상의 노려보는 시선은 미켈란젤로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교황율리우스 2세의 영묘가 아직도 미완성인 상태로 남아있지 않소,그분에게 그 일을 주문받은지 대체 몇 년이요? 10년,20년, 30년 그리고 이제 근 40년이 다 되어가고 있지 않소? (-28-)
미켈란젤로는 네개의 외부 기둥 안쪽에다 나선형 경사로를 설계하여 설치했다. 경사로는 완만하게 위로 올라가는 통행로이므로, 발디딤이 단단한 당나귀와 노새가 건설자재를 기둥의 가장 높은 곳까지 수송할 수 있었다.이 역축들은 수천장의 벽돌, 모르타르에 들어갈 모래와 석회, 밧줄, 나무 기둥, 비계용 널판, 대형물통에 든 작업 용수와 마실 물 따위를 날랐다. (-141-)
게다가 교황 율리우스 3세가 새로 하고 싶은 공사가 많았으나 교황청의 금고는 거의 고갈된 상황이러서, 미켈란젤로는 깊은 구상은 고사하고 간단한 대화나 스케치 단계에 그치는 공사에도 여러 번 관여했다. 그리하여 이런 공사들은 상당수가 미켈란젤로의 사후에 착수되거나 완공되었다.그러나 어떤 공사가 위대한 예술가의 이름과 조금이라도 결부됨변 미켈란젤로의 이름이 거론되다가 결국에는 그의 작품으로 돌려졌다., (-224-)
미켈란젤로는 로레토까지 ,가능하다면 달마티아까지 여해을 계속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는 조카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런 계획을 수행할 수가 없었단다. 사람을 보내 내가 로마로 돌아와야 한다는 기별이 왔기 때문이지." 로마로 소환된 것을 다소 자랑스럽게 여기며 우쭐했을 수도 있으나 그 기별은 그가 여전히 교황청의 직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289-)
생애 만년에 미켈란젤로는 미르첼로 베누스티, 다니엘라 다 볼테라, 티베리오 칼카니 같은 몇몇 젊은 예술가들과 가깝게 지냈다. 이런 친구들은 나이 든 얘술가에게 말동무가 되어주었을 뿐만 아니아 그의 미완성 공사들을 완공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으며, 그 결과로 미켈란젤로의 권위가 미치는 범위를 더욱 크게 확대했다. 미켈란젤로의 후기 경력 중 가장 큰 특징은 작업 요청이 점점 더 늘어났다느 것이다. (-336-)
미켈란젤로는 편지를 쓰는 게 어려워서 답신을 보내지 못한 데 대하여 사과했다. 그러던 어느 한 시점에 리오나르도는 미켈란젤로의 집안사람들이 그를 홀대한다는 잘못된 정보를 전달받았다. 떨리면서도 잘 통제된 글씨로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상황을 아주 분명하게 리오나르도에게 적어 보냈다. (-397-)
이탈리아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는 1475년에 태어나 , 1564년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90년 동안 이탈리아 위대한 예술가이자 건축가이며, 조각가였던 그가 남겨놓은 작품을 피에타, 다비드, 최후의 심판, 시스티나 대성당의 천장화를 그려냈으며, 바티칸의 성베드로 대성당을 계획하게 된다. 그느 이렇게 자신의 예술적 업적을 그 시대에 녹여내었으며,그의 내면 속 열등감과 조심스러움 속에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버리게 된다. 와벽을 추구하였던 그가 보여준 예술에 대한 집착은 자신의 부끄러움을 감축리 위한 사전 작업이다. 교황이 요구하는 것에 타협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목적과 의도에 맞는 예술적 작품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가지 의문점이 들게 된다. 우리는 1563년 성베드로 대성당 현장에 나간 90의 초로의 늙은 예술가는 그 당시 어떠한 마음으로 예술적 가치를 영위하였는지이다. 리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의 예술적 교류, 그 너머에 감춰진 그들은 40년에 걸친 대역사 율리우스 2세의 영묘의 모세상은 , 미케란젤로의 모세화였다. <인생은 짧고,예술은 영원하다>의 대명제는 미켈란젤로의 90년 인생에 있었다.그가 보여준 얘술적 가치와 혼, 40년 동안 오로지 하나의 조각을 완성하게 위해 그가 보여준 위대한 역사적인 업적은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그가 가진 독창성에 있었다. 일흔 한살, 죽음을 기다리며 , 퇴역을 앞둘 나이에 ,그의 생의 마지막 17년동안 보여준 성베드로 대성당 건축의 혼신은 우연의 사건이 아닌 역사적인 근본이었으며, 그로 인해 우리는 그가 죽은 사후에 ,500년이 지난 지금 성베드로 대성다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자신만의 독창적인 건축 양식, 저자 윌리엄 E윌리스가 얻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예술적 가치의 영속성이다. 즉 지금 우리의 일회성에 가까운 예술이 과거에 현재했던 예술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게 된다면,우리가 상기시켜야 하는 그가 원하는 예술의 근본, 황혼의 마지막 예술적 불꽃을 사르는 그가 보여준 힘은 가벼이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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