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사랑은 블랙 - 바람이 지나간 자리마다 꽃은 피어나고
이광희 지음 / 파람북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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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이른 아침 둘째 아들과 남산길을 걸을 때였습니다.

하늘을 향해 높게 자란 나무 끝에 이름모를 새가 둥지를 틀고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와,저렇게 높은 곳에 어쩌면 저런 멋진 집을 지을 수 있을까,감탄하며 아들과 수다를 떨고 있는데 마침 새 한마리가 자기 몸집의 두 배나 되는 긴 나뭇가지를 물고 나타났습니다.
자기가 만들던 둥지로 옮기려고 하는 것 같았어요.그런데 가지가 너무 무거웠나 봐요. 둥지까지 날아오르지 못하고 가지를 떨어뜨렸다가 다시 물고 올라가기를 반복하더군요. 우리는 새가 어떻게 할지 끝까지 지켜보기로 했어요.

새는 결국 키가 작은 나뭇가지에 올라가 잠시 쉬더니, 거기서 점차 높은 나뭇가지로 날아올라 물고간 긴 가지를 마침내 둥지에 사뿐히 올려놓았습니다. 그 과정을 지켜보던 우리는 탄성을 질렀어요. 

와, 다시는 '새대가리'라고 흉보면 안 되겠다. 저렇게 똑똑한 걸. 그건 말이 안 되는 욕이었어.우리는 너스레를 떨면서 그 자리를 떠났지만, 그날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름의 방법을 생각해내고 끈기를 가지고 반복해서 결국 목적을 이루고 마는 새를 보면서 저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포기하고 싶어질 때는 오늘 본 새를 떠올리자고 아들과 손잡고 다짐하면서요. (-39-)


어머니, 살아가면서 저의 서투른 말이 늘 문제가 되네요.

말을 많이 하며 살지 않은 저는 몇 마디 간신히 건네며 상대가 다 이해해 주기를 바라지만, 그렇게 해서는 결코 이해받을 수 없었습니다. 상대에게서 엉뚱한 대답이 나오면 가슴이 미어지도록 아프곤했지요.

말하지 않기를 선택하기도 했습니다. 침묵이 진정한 말이 되어 전달될 수 있기를 기다렸지만 그 기다림 또한 허사가 되곤 했습니다. 듣는 사람이 자신의 편견이나 선입견으로 제 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니, 말도 침묵도 모두 오해만 일으켰습니다. 결국은 시간이 많이 흘러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아파봐야 그때 제 얘기를 이해하겠지 하고 위로해보지만 아무튼 저에게 말하기는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살면 살수록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게 큰 축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서투른 말을 잘 이해해주고 ,거기에 숨은 뜻까지 알아주는 그런 사람을 만나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이 있을까요? (-97-)


가벼우면서 묵직하게

어머니, 저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걸까, 곰곰 생각해 봅니다.

새벽에 새와 함께 노래 부를 수 있고, 
꽃향기 맡으며 행복해할 수 있고,
사랑한다는 말,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 건네고,
미운 사람을 만나도 달려가 안아주고 토닥여줄 수 있는 가벼운 사람.'

그리고 
어떤 비난이나 모욕에도 
흔들리지 않는 묵직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156-)


안 좋은 것은 못 본 듯이

어머니는 당신을 해코지한 사람이나 배은망덕한 사람에게도 호의를 베푸셨습니다.제가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어요?" 라고 물었을 때 어머니가 대답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그 사람이 그런 거냐? 처한 환경이 그렇게 만든 거지. 인간은 다 그런거다. 잘하나 못하나 그래서 짠하다. 그러니 너도 사람을 그렇게 봐라."

상대가 잘못하는 게 그의 천성이 나빠서가 아니고 그가 살아온 환경 때문이니 그저 안쓰럽게 보고, 설사 손해를 입힌 사람일지라도 잘 대해주라고 타이르시던 어머니.그래서 늘 잘못한 사람을 다독이셨고 그 사람을 나쁘게 말씀하시는 법 없이 감싸주시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좋은 것은 더 좋게 보고, 잘못은 못 본 척하고, 안 좋은 일은 못 본 듯이 눈 감아주고, 괜찮은 점은 더 괜찮은 듯이, 잘한 것은 더 잘한 듯이 보아라," 
오늘도 청개구리처럼 반대로만 생각하는 제 마음을 어머니 가르침대로 다스려보지만 , 실천이 쉽지만은 않네요.
어머니는 어떻게 그러실 수 있었어요? (-221-)


"아야, 나는 우리 사모님이 나만 예뻐해 주신 줄 알았다."
자신만 유독 어머니의 보살핌과 사랑을 받은 줄 알았는데 너도나도 예외 없이 그런 경험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다들 놀라신 거예요. 어머니는 그렇게 각 사람에게 각별함을 심어주신 분이에요. (-226-)


인생은 짧다. 그래서 소소한 지혜 하나, 감동 하나가 소중하다. 살아가면서 넋놓고 잇을 때, 누군가 나를 의지해 주는 따스함과 감동, 그것이 생명이 가져다 주는 독특한 경험들 속에 내제되어 있었다. 에세이집 <아마도 사랑은 블랙>에서는 자연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사랑의 근원적 가치를 느끼게 해준다. 살아가면서 겪어야 하는 여러 희노애락들은 내 삶을 옥죄고, 나를 힘겨운 나락으로 빠져들게 한다.그럴 때면 한 권의 책이 가져다 주는 간접적인 경험, 나와 동떨어진 누군가의 이야기는 내 삶의 자침반이 되고, 나 스스로 성찰하게 된다. 


인생에서 ,누구가를 향하는 침묵과 이해, 용서는 어렵다. 그래서 그 용서를 쉽게 하는 이들이 위대하게 보일 때가 있다. 저자에게 시어머니는 그런 존재였다. 자신을 아프게 하고, 손해 보게 하는 그 누군가에게 잘한다는 것, 똑같이 공평하게 대한다는 것은 말은 쉬워도 행동으로 옮기기는 쉬워보이지는 않는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큰 결심이지만, 그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들 속에 있었다. 저자의 시어머니가 살아계실 적 남겨 놓은 정신적인 유산은 돌아가신 이후에도 여전히 여운이 남는 메시지가 되고 있다.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인간 사회에서, 소중한 것들, 감사하는 것들, 놓치면 안 되는 것들 하나하나 잃어버리지 않고 내 것으로 한다면,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내일이 될 수 있다. 애틋한 그리움 속에 사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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