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기쁨 - 이해인 시집
이해인 지음 / 열림원 / 200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까운 행복

산 너머 산
바다 건너 바다
마음 뒤의 마음
그리고 가장 완전한 
꿈 속의 어떤 사람


상상 속에 있는 것은
언제나 멀어서
아름답지

그러나 내가 
오늘도 가까이 
안아야 할 행복은

바로 앞의 산
바로 앞의 바다
바로 앞의 내 마음
바로 앞의 그 사람

놓치지 말자
보내지 말자. (-23-)


나는 악기를 다루듯이
편지를 씁니다
어떤 사람에겡
피아노나 풍금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어떤 사람에겐
첼로나 바이올린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또 어떤 사람에겐
가야금이나 거문고의 언어로 이야기하죠
글에도 음악이 흘러 아름답습니다.
받는 이들은 행복하답니다.(-35-)


엄마를 부르는 동안

어마를 부르는 동안은
나이 든 어른도 
모두 어린이가 됩니다.

밝게 웃다가도 
섧게 울고

좋다고 했다가도
싫다고 투정이고

변덕을 부려도
용서가 되니
반갑고 고맙고
기쁘대요.

엄마를 부르는 동안은
나쁜 생각도 멀리가고
죄를 짓지 않아 좋대요.

세상에 엄마가 있는 이도
엄마가 없는 이도
엄마를 부르면서
마음이 착하고 맑아지는 행복
어린이가 되는 행복!(-41-)


이사

어느 가을
훌쩍 짐 싸들고 이사를 가듯
나의 어머니가
저쪽 세상으로 
집을 옮기신 이후

나도 어머니의 집에
세 들어 살고 싶은 그리움으로
날마다 잠을 설쳤다.

서둘지 마
좀더 기다리면 되지
언젠가는 나처럼
아주 이사를 오게 되지

차가운 침묵의 방에서
따뜻한 말로
나를 위로하시는 어머니(-113-)


이별

늘 웃음으로
내 곁에 함께했던 당신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다시는 얼굴을 마주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지만
받아들이 수 없는 고통으로
하루하루가 막막합니다
이 깊은 슬픔은
나를 울지도 못하게 합니다.

늘 정다운 목소리로
내 곁에 함께했던 당신이
이제는 땅속에 누워
다시는 그 음성을 
들을 수 없는 슬픔으로
하루하루가 막막합니다.
이 놀라운 이별은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며
기도의 말도 잊게 합니다.

준비없이 찾아온 이별 앞에
이렇게도 속수무책인 나를 
당신, 어떻게 책임지시려는지요

사계절 내내
마음 속엔 바람만 불어
잠 못 드는 시간이 늘어날 텐데

언제 꿈에서라도 와서
꼭 한 번 설명해주셔요
그날을 꼭
기다리게 해주셔요. (-115-)


우정일기 2

1월엔 눈길을 걸으며 새해의 복을 빌어줄게
2월엔 촛불 밝히며 너의 건강을 위해 기도할게
3월엔 강변에 나가 너의 고운 이름을 부를 게
4월엔 언덕에 올라 네가 사는 집을 오래 바라볼게.
5월엔 숲으로 들어가 사랑의 편지를 쓸게
6월엔 흰 구름 바라보며 네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를게
7월엔 파도치는 바위섬에 네 이름을 새겨둘게
8월엔 바닷가에 누워서 해를 바라보며 크게 웃어줄게
9월엔 풀밭에 앉아 네 얼굴을 그려볼게
10월엥 단풍 고운 오솔길에서 너를 향해 고맙다고 말할게
11월엔 텅 빈 들녘에 나가 사랑한다고 말할게
12월엔 제일 예쁜 선물의 집에 들어가 네가 선물임을 기억하며 선물을 살게 (-145-)


시든 꽃

시들었다고 
쉽게 버리지 못합니다.

시든 꽃잎 위에 얹혀 있는 
오래된 시간의 말
추억의 말

할 말은 많지만
참고 있는 꽃들이
가엾어 보입니다.

시든 꽃 버리기 전에
아주 잠시라도 
이별의 시간을 가지세요
그리고 
조금은 울어도 좋습니다.

이별 앞에서는 
늘 슬픔이 먼저이므로
보이는 마음에는
고마움과 미안함이 함께해
자꾸만 눈물이 나려 하므로(-185-)


행복, 기쁨, 사랑은 서로 연결된다. 행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행복을 내 시간과 삶에 채우고 있다. 살아가기 위한 변화의 물결,그 물결 속에서, 이별이 있고, 고마움과 그리움이 있었다. 시인 이해인, 1945년에 태어나 70년이 훌쩍 넘긴 그 시간의 괘적 속에서, 참회와 삶의 찬미, 그리고 내 삶의 관조를 느낄 수 있었다. 살아가면서 내 앞에 놓여진 것에 대해서 기쁨과 행복을 느낀다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해 주는 한 권의 시집이다. 지난 세월 이 시집에서 투영하고자 하는 것은 행복과 기쁨을 위한 말과 언어들이다. 내가 쓰는 말이 돌고 돌아 나에게 향한다는 것을 안다면, 말을 함부러 하지 못할 것이다. 거친 말과 참회하지 않는 삶에서, 우리는 오로지 이기적인 행복과 기쁨만 갈구하고 있었다. 살아가고, 주어진 삶에 대해 감사히 여길 수 있는 온전한 삶, 그 삶이 이기적인 나를 이롭게 하고, 타인을 이롭게 한다는 걸, 시인 이해인의 말의 발자욱 속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과거의, 지난 날과 \지난 삶을 돌아보게 된다. <작은 기쁨> 속에 나 스스로 성찰하게 만드는 <우정 일기2>가 있다.이 시는 내가 태어나면서, 어릴 적부터 내 삶에 깃들게 한다면, 내 삶은 기쁨으로 충만할 수 있다. 내 삶의 변화를 위한 의미와 가치는 내 가까운 곳에 있었다. 기쁨을 내 안에서 찾아내는 것, 그 하나하나가 아의 긍정적인 삶이며, 내 삶이 완성된다면,나의 삶은 온전히 새로운 삶으로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주어진 삶에 만족하고, 감사히 여기는 것,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보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가 더 중요한 , 그걸 깨닫게 해 주는 시<작은 기쁨> 속에 하나하나 채워지게 된다. 시든 꽃에 대한 감사함과 기쁨, 침묵을 잊지 않는 것, 경건한 마음으로 시든 꽃을 바라본다면, 그 마음으로 내 삶을 떠난 수많은 이별에 대해서 시든 꽃을 바라보는 심정으로 감사함으로 다가갈 수 있다. 네 인생의 소소한 채움과 비움의 지혜로움이 느껴지는 <작은 기쁨>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