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헤이팅 게임
샐리 쏜 지음, 비비안 한 옮김 / 파피펍 / 2021년 12월
평점 :
절판

사랑과 미움은 둘 다 본능적이라는 면에서 닮았다. 상대를 생각하기만 해도 속이 울렁거린다. 심장이 벌렁벌렁 뛰는 게 옷 너머로 보일 듯하다. 별안간 입맛이 뚝 떨어지고 ,잠도 잘 안 온다. (-9-)
일단 내 소개를 해 볼까? 우선 , 내 이름은 '루시 허튼'이고, 도서출판 '백슬리 & 가민' 의 두 공동 CEO 중 하나인 헬렌 파스칼 직속 비서다. 앳날 옛적 우리의 조그만 가민 출판사는 폭삭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10-)
조슈아 템플먼은 지금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을 따라 하고 있다.오늘의 맞대결 종목은 거울게임,하도 은근히 움직여서 언뜻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 내 눈은 못 속인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시간차를 두고 따라하고 있는데, 내가 손을 내리고 의자를 돌려서 바로 앉자, 역시나 저쪽도 그대로 따라한다. (-17-)
그러면서 남은 술을 마저 마셨다. 혀에 희미하게 감도는 민트맛이 술맛을 망쳤다. 대니가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바로 일어나 화장실이 있는 복도 쪽으로 향했다. 화장실 벽에 기대어 서서, 브래지어 속에서 꺼낸 티슈로 누가를 찍어 눌렀다. 상황 끝내준다. 진짜. (-192-)
조슈아의 눈을 싸늘하게 가늘어지더니 내가 준 딸기를 먹기 시작했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여태 저 남자가 뭘 먹는 걸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는데. (-382-)
하지만 나는 여전히 주저하며 노새처럼 버텼다.
"이번 주말은 나한텐 힘겨운 시간이 될거야. 하지만 루시 당신이 곁에 있으면 그렇게 나쁘진 않을 것 같아.'
조쉬가 날 그렇게까지 생각한다는 데 놀라서 그랬는지 힘이 풀여 순순히 차에 올라탔다. (-598-)
지퍼가 열리고 ,드레스가 그대로 흘러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옷더미에서 발을 빼낸 후 주워들었는데 별안간 시선이 너무 의식됐다. 잠깐 몸을 가렸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니 여기까지 이르러서 이러는 게 더 웃기게 느껴졌다. 하는 수 없이 옆으로 치웠다. (-767-)
"나 때문에 상처를 자주 받아서 미안해. 당신을 나한테서 보호했어야 했는데, 나란 놈은 기본값이 이런 식으로 설정된 지 오래됐어. 공격당하기 전에 먼저 공격한다. 이런 나를 당신은 몇 날 며칠, 몇 주, 몇 달 동안이나 상대했어야 했는데, 그 누구도 하지 못한 방식으로 그걸 감당해 낸 거야."
내가 뭐라 대꾸하려 하자 그는 고개를 젓고 말을 이어나갔다.
"날마다 날마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서 공격당하는 당신을 보고 있기만 했어. 내가 당신한테 한 짓은 내 인생 최악의 실수야." (-880-)
누군가 미워하면, 그 미움이 원수가 되거나 사랑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남녀간에 애증이라는 말이 그냥 생긴 건 아닌 것이다. 출판사에 일하고 있는 가민 출판사 CEO 헬렌파스칼 비서 루시 허튼, 그리고 벡슬링 북스 의 ceo 벡슬링 대표의 비서 조슈아 템플먼이 주인공이다. 이 두 남녀 주인공은 키 차이가 40센티에 이를 정도로 신체적으로 큰 차이를 보여주고 있으며, 두 출판사가 경영난으로 인해 합병하기에 이르렀다.
서로 연결될 일도 인여이 될 일도 없었던 루시 허튼과 조슈아 템플먼은 금성과 화성만큼이나 심리적으로 거리가 먼 사이였다. 가치관도 다르고 살아온 가정환경도 다르며, 문화적인 소비 패턴도 다르다. 농장집 딸 루시는 의사집안의 엘리트인 조슈아와 한 공간에 있게 된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갈등과 오해가 발생하게 되고, 고양이와 개의 관계처럼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서로 앙숙처럼 연결되고 있다.
이 소설은 로맨스다. 미워하는 사람과 미움으로 남지 않고, 사랑으로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인지 이 소설에 나오고 있다. 루시는 자신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는 조슈아가 극하게 미웠고, 혐오스러웠다. 자신의 출판사 업무 컴퓨터의 비번에 조슈아를 혐오하는 단어를 집어넣을 정도로 ,자신의 생각과 기준을 명확하게 갖추고 있다. 자시이 조슈아를 미워하면, 조슈아도 나를 미워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기준이 무너지는 순간이 반드시 오게 된다. 오해가 오해 그대로 멈춰 있다면, 사람은 바뀌지 않으려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미워하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오해가 오해로 드러나는 순간, 스스로 빚을 지고 있는 기분이 든다. 루시가 조슈아에게 갑자기 관대해지고, 고분고분해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즉 서로 멀어졌던 거리감이 관대해짐으로서, 어떤 실수가 발생하더라도, 무난하게 패쓰하기에 이르렀으며, 미워함으로서 보이지 않았던 조슈아 특유의 사랑을 할 수 밖에 없는 친근한 매력을 찾게 된다. 그것이 이 책에 나오는 로맨스의 골격이 되고 있으며, 헤이트 HATE를 유지하고 있었던 두 사람이 각별한 사이,허물을 다 보여주는 사이로 바뀌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으로 연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