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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물쇠 속의 아이들 - 어린 북파공작원의 비밀
김영권 지음 / 작가와비평 / 2022년 1월
평점 :



"우선 이름부터 바꾸고 보자.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조부님께서 미리 지어 놓은 이름이라지만, 그래서 이왕이면 좋게 생각하려고 하기도 했었지만, 어디지 모르게 별로 좋잖은 느낌이야. 용이 신령스러운 상사으이 존재라지만 어디까지나 동물이잖아. 개미나 아비를 이름 자에 쓰는 것처럼 좀 멋쩍어. 그리고 왠지 내겐 너무 강렬한 불꽃이 쏟아져 오는 듯해서 못 견디겠어." (-22-)
처운은 거리가 먼 줄도 다리가 아픈줄도 모른 채 생각에 잠겨 걸었다.
여덟 살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거렁뱅이로 해매 다닌 길이었다. 눈물겨운 삶이기도 했지만 어찌보면 보잘것없는 잡초인생이기도 했다. (-111-)
희고 보드보들한 그 몸을 덮치자 그녀는 한 순간 토끼처럼 흠칫 놀라더니 곧 가슴만 팔딱거리며 가만히 있었어. 기름이 번질거리는 입으로 그녀의 도톰한 입술을 빨자 앙탈을 부리더니 콧구멍을 끈적끈적 핥으니까 숨이 가쁜지 엉겁결에 혀를 살짝 내밀더군. (-186-)
원래 빵바레란 추운 겨울날 알몸으로 깊은 계곡의 얼음을 깨고 들어가 얼굴만 내놓은 채 쭈그려 있는 형벌이었다. 온몸에 큰 비늘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몰려들어 차츰 감각이 마비돼 버렷허 추위조차 못 느끼는 순간 "일어서라!"하는 명령이 내린다. (-218-)
해군 장병 39명이 전사한 충무함 침몰 사건을 비롯해 경원선 폭파, 대한항공기 납치, 울진 삼척 지역 무장공비 사건 등이 모두 그 무렵에 일어났다. (-281-)
그러자 순식간에 폭우가 쏟아지듯 반쯤 시체가 된 몸을 향해 방망이질이 시작되었다. 신음 소리도 없었다. 이제 더 이상 발버둥이 사라졌는데도 몽둥이질은 로봇의 관성처럼 계속됐다.몽둥이를 쥐지 못한 놈 하나는 틈새로 껴들어 발길질을 해댔다. (-318-)
청운은 예전에 국가의 대행자인 물색조들이 속삭였던 감언이설을 그때나 지금이나 믿진 않았다. 속인 놈도 나쁘지만 속은 놈도 멍청하지 않은가! 하지만 한 국가가 어린 청소년들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인 득해 기분이 더러ㅓ웠다. (-392-)
소설 <자물쇠 속의 아이들>은 전편이었던 <선감도>의 후속이다. 일제시대 부모를 일찍 여의던 윤용운은 서해안 최북단 옹진군 선감도에 있는 선감학원에 머무르게 된다. 이곳은 대한민국의 부랑자들, 사회적인 문제아들을 수용하는 곳이며 ,1980년까지 폐쇄되지 않는 채 은밀한 형태로,국가의 목적에 맞게 쓰여졌다. 주인공 용운은 8살이 되던 해, 감언이설에 끌려 선감동에 들어갔다가, 구각의 목적에 따라 쓰여졌으며,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 선감원을 탈출하게 된다.이것이 전편에 나오는 선감도 이야기다
영운은 청운으로 이름을 개명하게 된다. 자신의 이름이 불행의 씨앗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북파공작원에 어린 아이를 투입시켰고, 군대에 가기 전 영운은 부랑아였으며, 숫총각이었다. 공비,좌익, 빨갱이 용어가 그 시대에 널리 쓰여진다. 588 청량리가 있는 환락가, 그곳에서 여성과 성관계를 맺게 된 영운은 새로는 변화, 인간의 욕망을 채우는 성에 굶주린 늑대와 같은 존재였다.
그러하였던 영운은 이제 군대에 들어가면서,끊임없이 국가란 나에게 어떤 가치이며,어떤 의미로 존재하는지 물어보게 된다. 책임과 의무를 떠나서 폭력과 학대에 물들어서 비리와 부패의 온상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 용운에게 군대는 폭력과 학대가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곳이며,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 시작되고 있다.
이 소설은 과거 우리의 암울한 근현대사를 통찰하고 있었다.아픔과 슬픔 속에서 시체가 쌓이게 되는 군부독재 시대에서, 부랑아는 북한에 특수공작 임무를 수행하는 존재로 변질되었으며, 세상에 대한 이해 너머, 잔인한 국가의 모습을 보기에 이르렀다. 자신의 안전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국가, 구국의 나라를 외치는 국가는 용운의 의사와 무관한 나라의 현주소였으며,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 시작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나라와 , 소설 속 주인공이 알고 있는 나라의 모습,그 이질적인 모습이 이제 끝난 것이 아니라, 21세기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음을 소설에서 드러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