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와이즈 바우어의 세상의 모든 역사 : 중세편 1 수잔 와이즈 바우어의 세상의 모든 역사 1
수잔 와이즈 바우어 지음, 왕수민 옮김 / 부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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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년 10월 29일 아침, 로마인 군인 콘스탄티누스가 휘하 장병들을 거느린 채 도시 로마의 성문 안을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15-)


훈족, 그들이 서방 세계의 저 안저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훈족은 이들을 한 번도 면전에서 마주한 적 없던 로마이에게 지진과 쓰나미만큼이나 몸서리처지는,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그런 악마적인 힘을 가진 존재로만 여겨졌다. (-118-)


유유도 , 선대왕들이 그랬듯, 아무 명분 없이 황제를 옥좌에서 끌어내리는 것보다는 적법한 양식을 택했다. 무릇 재위란, 중국의 천명 신화가 욕수하듯, 힘으로 빼앗는 게 아니라 덕으로 얻어야 하는 것이었으므로. 그는 진 공제에게 서한을 띄워 다음과 같은 칙령을 반포하도록 했다. (-232-)


529년 경, 베네딕트는 이들 무리를 이끌고 카시노 성읍 근처의 한 산 위로 올라갔다. 산꼭대기에는 낡은 아폴론신전이 있었는데 세월의 풍파를 견디지 못하고 다 쓰러져 가는 참이었다. 베네딕트와 수사들은 그 신전을 깨끗이 불태우고 그 자리에 자신들이 쓸 수도원을 짓기 시작했다. (-328-)


마야족이 세웠던 도시들에서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명확히 파악하기보다는 앞의 두 도시보다도 훨씬 더 어렵다. 마야족이 세운 도시들은 , 중앙아메리카의 다른 이웃들과 달리, 시종일관 독립을 유지해 나갔다.(-426-)


610년 , 젊은 풀라케신 2세가 이런 숙부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다. 풀라케신 2세의 궁정 시인 라비키르티의 시를 보면, 풀라케신 2세가 당시 반란의 명분으로 무엇을 내세웠는지가 드러난다. 그 시에서 풀라케신은 자신이 왕위에 올라야 하는 까닭을 자신과 이름이 똑같은 할아버지에게서 찾는다. (-516-)


돌궐족는 말 머리를 돌려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당 태조은 돌궐족에게 새로운 형제의 의란 어떤 것인지를 똑똑히 보여 준다. 동돌궐 신민들을 호ㅚ유해 힐리 카간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라고 종용한 것이다. 니는 그동안 당 태종이 자기 친형제들 사이에 보여준 모습, 그러니까 자신이 황위에 오르기 위해 한 핏줄의 형제 둘을 살해했던 그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631-)


바누 우마미야 씨족이 무함마드와 연고가 있기는 했지만 , 그들은 무함마드와는 한참 먼 친척이었다. 바누 우마미야와 무함마드의 실제 출신 씨족인 바누 하심의 공통점이라야 한 조상을 두었다는 게 고작이었다. 반면에 알리 자신은 바누 하심 씨족으로,예언자 무함마드와 사위이면서 그의 사촌이었다. 알리의 아들 하산 이븐 알리는 무함마드의 딸 파티마가 낳은 예언자 무함마드의 손자이기도 했다. (-694-)


중세 라는 단어가 등장하면, 중세 유럽 사회,종교에 기반한 수도원과 수도사가 존재하는 유럽을 떠올리게 되고, 르네상스시대를 기억하게 된다. 중세와 유럽은 동일하게 생각하지만, 실제 중세는 유럽 뿐 아니라 중동 이슬람사, 인도의 역사, 중국의 역사와 삼국시대의 약사를 아우르고 있어야 한다. 동시대에 분ㄹ이된 역사들을 하나로 통섭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이 동양, 서양이 아닌 세상의 모든 역사라고 한 연유는 그래서다. 중세 시대 , 서기 4세기경, 로마의 시대가 서서히 저물고, 새로운 유럽이 탄생되는 순간을 기록하고 있다. 절대 왕국이었던 천년의 수도 로마가 사라지고, 가톨릭이 개신교로 전환되는 과도기에 , 유목 민족 훈족이 나타나기에 이르렀다.새로운 변화와 존재가 나타났다는 건 기존의 기득권에게는 위협이자 악마가 될 개연성이 있는 공포스러운 존재였다. 피지배자의 입장으로 보면, 훈족이 나타나는 것이 반가울 수 있지만, 유럽  국토를 유린한다는 측면에서 기득권이 바라보는 훈족은 악마 그 자체로 인식되고 있었다.


역사는 변화를 즐긴다. 변화가 없으면, 역사가 가진 힘이 소멸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서서히 로마의 존재가 흐려지고, 이슬람에는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 마호메트가 등장하기에 이르었다. 꼬란에 근거한 종교적 가치를 우선하는 이슬람교는 유럽의 가톨릭과 다른 꼬란에 적혀 있는 그대로의 삶을 원칙으로 살아가고 있었으며, 종교와 삶을 일치시키게 된다.그들에게 종교는 삶이며, 삶이 종교였던 것이다.


이제 이슬람 사회에서, 중국의 역사로 넘어가고 있었다. 이 흐름을 책에서 써내려 갈 때, 동시성이 아닌 힘과 권력의 논리에 따라서, 서로의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중국사 뿐만 아니라, 역사에 기록되지 않는 미스터리한 마야 문명,까지 접근하고 있었으며, 한반도의 고구려사까지 들여다 보고 있었다. 작가의 중세에 대한 시선과 관점이 역사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으며, 우리의 역사가 서로 분리되지 않는 교통의 발달, 운송수단의 발딸에 ㄸ짜라서 장소와 시간을 이동하고 있음을 잘 묘사하고 있었다. 삶과 역사 속에 나름대로 강을 끼고 살아가는 문명이 있었으며, 문명의 태동기에서 성장,성숙, 전성기, 그리고 쇠퇴기를 거쳐 멸먕으로 치닫는 400년의 세계의 역사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의 강점이며, 동양과 서양, 중동과 동아시아, 인도사,남미 국가까지 아우르는 빅히스토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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