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여자들의 사회 - 말해지지 않은 무궁무진한 여자들의 관계에 대하여
권김현영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12월
평점 :







여자들의 관계는 남근 중심의 의미화 경제 속에서 '한때'의 문제로, 남자 없는 세계의 대리 보충 같은 형태로 이해됐다. 그러나 가부장제에 포섭되지 않는 여자들의 사회가 설령 불완전하고 임시적이었다고 해도 그것은 남자가 없기 때문이 아니었다. 여자들 간의 관계는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중간 지대에 놓여 있다. 오히려 남자 친구가 생기면 여자들의 사회는 종종 냉각되곤 했다. 남자 동성 사회에서 여자가 이성에 남성의 알리바이로 등장하여 혐오 혹은 숭배의 대상으로 타자화되었던 것과 비교하자면, 여성 동성 사회에서 남자는 구성 요소로 등장조차하지 않았다.그럴 필요가 애당초 없었다. (-21-)
그런데 여자와 남자가 아니라 동성 간에 몸이 바뀌었다면 어떨까. 동일 세대 내에서 두 여자의 몸이 바뀐다면, 보통 이것은 상호 워너비의 세계를 구현한다. 미국의 드라마 시리즈 <드롭 데드 디바>에서는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죽은 24살의 모델 뎁이 31살의 뚱뚱하고 머리 좋은 변호사 제인으로 환생하는 설정이 나온다. 오직 몸으로만 가치를 평가받던 뎁이 제인의 머리를 사용하면서 느끼는 쾌감, 몸에 대한 자존감이 낮았던 제인이 사이즈에 구애받지 않고 패션을 즐기면서 자신감을 찾아가는 모습이 이 드라마의 매력인데, 이 드라마가 가장 지루해지는 순간은 다름 아닌 로맨스가 등장할 때다. 로맨틱 코미디인데 로맨스가 재미없다니, 여자와 여자의 몸이 바뀐다는 설정만으로도 장르의 규칙이 근본부터 흐들린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58-)
"창녀와 같이 살 순 없다"라고 예은은 소리쳤지만, 과연 누가 창녀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누가 창녀가 안 될 수 있지?드라마는 에둘러가지 않고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파고 들어간다. 남자 사람 애인의 학벌 콤플렉스를 감히 자극했다는 이유로 바닥에 내팽겨져친 예은은 드디어 자존감 도둑이자 본인 스스로 인정한 '나쁜 남자' 고두영과 헤어지기로 결심한다. (-103-)
여기까지는 익숙한 전개다. 그런데 현수막의 내용은 이랬다. "정부야, 아무리 나대봐라 내가 결혼하나 고양이랑 살지." 갑자기 고양이라니, 고양이는 이 집회의 성격을 완전히 다르게 만들었다. 기존의 규범을 가볍게 거절한 이들은 낡은 세상과 결별을 선언했다. 이들은 정부에게 무엇을 요구하려고 나온게 아니라 이미 세상은 달라졋다고 말한 것이다. 결혼 제도 내의 성차별 문제가 고쳐지든 말든, 그 결혼 안 하면 그만이다. 외롭지 않느나고? 고양이와 살면 되지.작당 모의를 함께할 치구들과 함께.(-118-)
다만 남성 리더들이 지배적인 집단에서, 혼자 그 지위까지 오른 여자들은 남성 중심 문화에 균열을 내기보다는 남성 집단의 규칙을 따라간다. 그래야만 그 지위까지 올라가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조직 내에 유일한 여성 리더가 된 여자 상사들이 자신들의 생존과 성공을 위해 남성 중심주의에 동화되거나 성차별 이슈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그래서 여자 상사들과 함께 일하는 게 더 힘들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나는 "자매애는 있다"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억압받은 자들의 본능은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순응하는 데 있다. 저항은 아주 드물게 이루어지며 그래서 놀라운 것이다. 자매애는 그냥 생기지 않는다. 여자들이 집단을 이루고, 위아래 다양한 위치에 포진해 있어야 서로 욕망하고 반목하다가도 저항하고 연대할 수 있다. (-185-)
인간은 독특하다. 동물의 한 종이면서, 스스로 동물에 편입되는 것을 거부한다. 인간에게 동물이라는 표현을 쓰면 모욕적이고, 혐오스럽다. 인간은 남자와 여자로 이성과 동성으로 구분짓고, 그안에 독특한 문화가 존재하고 있다. 여성들의 모임과 남성들의 모임이 배타적이고, 서로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것은 각자 생존과 성공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여자들의 서사와 남자들의 서사가 차이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었고, 여성은 그것과 결별을 선언한다.
책에는 <빨간머리 앤>,영화 고양이를 부탁해>가 나오고 있다. 빨간 머리 앤은 1900년대 루시 모드 몽고메리가 쓴 소설이며,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의 표상, 여성에게 내면의 고민과 걱정 , 미래의 이상과 현실을 함축적으로 나타낸 페미니즘 소설의 원형에 가깝다. 그 원작 소설이 있었기에 페미니즘 현상이 있었고, 순종적인 여성 사회에서,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한 여성들의 저항이 지속되었던 에너지는 여기에 있다. 이 책에 배두나 주연의 <고양이를 부탁해>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매우 큰 영향력을 지니며, 여성 스스로 당연한 것과 결별하게 된다. 저출산문제, 비혼주의 여성들이 늘어나고, 모성애 신화를 거부하기 시작한 그 영화에서 출발한다. 외로움과 고독함에 몸부림 쳤던 여성들이 그 대안으로 선택한 결혼과 임신, 출산이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신화를 잉태하였고, 여성상의 왜곡된 신화 저변에 암묵적인 희생을 강요당했다. 하지만 그 영화가 개봉되고, 2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그 영화가 함축하고 있는 본질이 사회의 현상과 흐름, 트렌드에 채워지게 된다. 여성은 결혼안할 권리를 지니고 있고, 비혼주의 , 골드미스라도 괜찮다는 인식이 정착되었다. 과거 노처녀, 노총각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 차별과 혐오에 대해 거부하는 것을 보편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문화은 자유롭고, 인간가의 상상력을 시험한다. 소설에서, 영화에서, 여성의 몸이 여성의 몸과 체인지 되는 것, 여성의 몸과 남성의 몸이 체인지 되는 경우가 있다.넷플릭스는 그걸 더 즐기고 있으며, 남성이 심리와 여성의 심리에 대해, 분석하는 계기로 삼고 있다. 이 책에는 그 모습 뒤에 숨겨진 여성들의 사회적 관계 맺기, 남성들의 사회적 관계 형성과 다른 점을 꼬집고 있으며, 로맨틱 영화의 소재로 많이 삼고 있는 이유는 몸을 바꾸는 행위 자체가 코미디에 가까운 장르이기 때문이다. 1997년에 개봉한 영화 정준,김소연 주연의 체인지에서 보듯 말썽꾸러기 정준과 모범생 김소연의 몸을 체인지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어색해지고, 주변 환경이 달라지는 것을 상상하면서, 관객은 웃음을 멈추지 못한다. 그것이 그 영화의 모티브이며,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심리와 남성의 심리 차이를 영화에 담아내고 있다. 인간은 철저히 사회를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짓고, 서로에 대해 잘 모르고 생과 죽음을 맞이 하게 된다. 남자가 생각하는 여탕 보고서와 여자들이 생각하는 여탕 보고서가 다른 이유, 남탕 보고서가 재미 없는 이유, 그 심리와 서사에 대해서 , 페미니스트와 미투 현상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은 이 책의 주목적이며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