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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신처에서 보낸 날들
장길수 지음 / 열아홉 / 2021년 11월
평점 :






지금 ,이 순간에도 저 북녘땅 어디선가에는 한 줌 강냉이 알이라도 얻기 위해 농민 시장을 배회하는 꽃제비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자유라는 두 글자를 얻기 위해 , 죽음을 무릎쓰고 두만강을 건너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16-)
한국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같은 동포니까 말하는데, 어디 가서 구걸하고 빌어먹으며 살지 마세요."
그러면서 점심을 먹었냐고 묻기에 못 먹었다고 선뜻 대답했다. 그랬더니 이거면 되냐며 15위안을 주었다. 나는 얼른 "됩니다! 고맙습니다!" 하고는 돈을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136-)
롤러 스케이트장은 그리 크지 않고 콘크리트 바닥으로 되어 있었다. 롤러 스케이트도 처음 보는 게다짝 같은 신이었다. 좋든 나쁘든 이미 돈을 내서 할 수 없이 타다만 했다. 그런 롤러스케이트는 처음 타서 처음에는 잘 못 탔지만, 그래도 기를 쓰고 하니 약간씩 되었다. (-211-)
오늘 저녘 총화 때 싸움의 장본인인 내 잘못을 빌고 또 반성하고 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 주려고 노력하겠다. 그러나 오늘 이 싸움이 헛된 싸움이 아니고 우리에게 무언가를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기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저녁 총화시갈에 화해가 되겠는지 아니면 그 모양이겠는지.내 생각에는 그냥 그 모양일 것 같다. (-334-)
언제나 큰아버지를 믿고 따르자. 열심히 그들의 몫까지 다해 배우고 또 그들의 몫까지 열심히 벌자. 이담에 늦게라도 찾아가 아버지, 형님에게 자식된 도리, 형제의 도리를 하고 싶다. 그분들이 남은 인생이라도 편하게 살 수 있도록 해 주고 싶다. (-400-)
장길수의 <은신처에서 보낸 날들>을 한국판 안네의 일기라고 한다. 히틀러 체제하에서 죽음을 당했던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가 쓰 일기처럼, 저자 장길수도, 중국 공안을 피해, 연길과 대련의 은신처에서 , 남한으로 가는 시간을 꿈꾸게 된다. 이 책은 저자가 남한으로 오기 전, 1999년 만 15살이었던 그 시점으로 넘어가게 된다. 북한함경북도 화대군 룡포리에서 태어난 장길수는 15세 되던 1999년 국경도시 회령에서 두만강을 건너 탈북을 시도하였고, 조선족이 많이 사는 연길에 정착하게 된다.
그는 은신처에 숨어 지내면서,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구걸을 하여 하루 하루 연명하게 된다.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 ,2년 이상 정착하게 된 장길수 의 삶은 비루하지만, 결코 북한으로 가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가 서려 있었다. 3년 동안 대련 은신처에서 중국어를 배우고, 한국의 역사를 배우는 과정에서, 김일성, 김정일 부자가 해왔던 잔인한 인간 말살정책을 목도하였으며, 그들이 역사 왜곡을 자행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6.25 한국전쟁을 시작한 이가 북한임에도 불구하고,그들이 피해자로 남아, 마치 미국을 상대로 위대한 승리를 한 것처럼 김일성 우상화 작업을 위해 역사를 고쳐 나갔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꽃제비, 장마당, 인육, 인조고기 ,생활총화가 등장하고 있다.우리에게 낯선 용어, 그들이 쓰는 언어를 본다면, 인간의 인권 따위는 전혀 없다. 살아가고,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며, 김일성을 어버이로 삼는 것, 눈앞에 시체가 뒹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적제적소에 처리하지 않는 현실,북한의 현실과 달리 점점 더 잘 살고 있는 남한의 사회적 인프라를 보면서 , 탈북은 점점 더 가까워지게 된다. 먼저 탈북을 하였던 큰아버지, 그리고 장길수 가족의 이야기가 국제사회에 알려지면서, 그들이 탈북할 수 있는 루트가 서서히 완성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2001년 길수 어머니는 공안에 체포되어 북한으로 복송되고 말았고, 나머지 가족들 대부분 남한으로 무사히 건너올 수 있었다. 3년의 시간, 긴 여정 속에서, 저자가 꿈꾸었던 남북통일은 20년이 지난 현재, 마흔을 코앞에 두고도 여전히 미지수다. 장길수의 아버지는 이제 일흔이 넘었고, 우리가 생각하는 이산가족 찾기 캠패인과 탈북민 장길수가 생각하는 이산가족 찾기는 그 의미와 목적에 있어서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탈북을 넘어서서, 통일이 되어야 하는 핵심 이유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