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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만든 집 ㅣ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박영란 지음 / 우리학교 / 2021년 12월
평점 :
"그럼 대출이라도 좀 빼게 해 주든지요. 가지고만 있는 재산이 재산이랍니까. 더 잘되도록 써먹는게 재산이지."
그러자 할머니가 삼촌을 향해 고함쳤다. 예전에 할아버지가 그랬듯 엄한 목소리였다.
"이 집은 경주 몫이다. 손댈 생각 마!"(-39-)
삼촌이 또 무슨 일을 꾸미는 걸까? 그때처럼 서류를 찾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류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삼촌은 서류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삼촌이 서류를 찾는다고 해도 소용없다. 내 동의가 없으면 이 집을 팔 수 없으니까. 내가 삼촌 의견에 동의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102-)
"안방이 이렇게나 넓습니다. 요즘은 이런 방 없어요."
부동산 직원이 천장을 보면서 방 넓이를 가늠해 보라는 듯이 두 손바닥을 위로 펼쳤다. 어질러진 방바닥을 알아차리고 사람들 시선을 위로 끌어 올리는 듯했다.
"그런데 이 집은 안방을 학생이 쓰네...."(-137-)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한 채 어질러진 방을 천천히 정리했다. 널브러진 물건을 제자리에 두고 서랍안을 정돈할 때였다.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거셌다. 창을 내다보니 고모부가 나가고 있었다. 집에 올 때 입었던 옷을 입ㄱ도 들고 왔던 가방을 어깨에 걸친 채 였다. 가방끈은 고쳤거나 대충 묶었겠지. (-212-)
"아빠는 나쁜 일을 한 번 한 거야.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야."
순지는 속으로 몇 번이고 되새겨 보았을 생각을 군더더지 없이 천천히 말로 옮겼다. 나는 순지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지하 창고의 어둠 속에서, 뭔가를 조금 일고 나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215-)
청소년 소설<나로 만든 집>에서 주인공은 경주이다.아버지 어머니 일찍 세상을 떠나고, 할아버지,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경주, 경주의 할머니 마저 세상을 떠나게 된다.
경주와 할아버지,할머니 세식구가 살았던 2층 짜리 집에는 이제 경주 혼자 달랑 남았다. 교통사고로 인해 부모 없이 성장한 경주,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유언으로 집을 손주 몫으로 넘겨 놓았고, 유언을 하고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제 큰 집에서 혼자 남은 이 집을 원하는 이가 삼촌과 고모가 있다. 할아버지,할머니가 있을 때는 코빼기도 안 보였던 고모와 삼촌은 할머니가 돌아가시자마자, 집에서 권리를 행사하려고 한다. 할아버지의 재산을 한탕으로 날렸던 삼촌이 이제 조카 몫으로 남겨진 재산마저 자기 것으로 삼고 싶어했으며, 집문서를 찾기 위해서, 경주가 사는 집에 도착하였으며, 삼촌은 자신의 집을 옮기게 된다. 한 편 고모와 고모의 딸이자 경주의 외사촌인 순지, 둘은 고모부와 이혼 후 원룸에서 살게 되는데,할머니 부재 이후, 경주가 있는 집 2층에 살고 싶었으며, 경주는 딱한 고모의 사정을 이해하고, 함께 살게 된다.
이 소설은 재산분쟁에 관한 일상적인 모습이 나오고 있다. 장례식이 끝나자 마자 집처분을 하기 위한 조카와 고모, 그리고 삼촌과의 재산 다툼이 시작되었다. 삼촌의 시선으로 보면, 철부지, 미성숙한 경주에 대해서, 집처분에 대한 권리마저 빼앗으려 하는 고모의 모습과 삼촌의 모습을 보면 파렴치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보듯 세사람은 각자 딱한 사정이 있었다.경주가 태어나기 전 , 삼촌의 과거의 나쁜 트라우마, 고모는 고모부와 이혼 후 남겨진 빚을 처리하기 위한 생존,보호자 없이 혼자 남겨진 경주가 처한 현실, 집에 대해서,세사람은 각자의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소위 할아버지,할머니가 남겨 놓은 부채를 집을 소유함으로,그 부채를 탕감하려고 한다. 집문서를 찾기 위해서 안방을 들쑤시지만, 집문서는 안 보이고, 경주는 집에 비어있는 지하에 갇혀 버린다. 그 과정에서 서로 처해진 현실을 알게 되었고, 집을 어떻게 할기 고민하는 과정이 나오고 있다.
남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우리 주변에 흔한 일이 될 수 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집에 대한 처분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집의 가치는 얼마 안 되지만, 서로 각자 권리를 요구하고, 그 권리를 행하려 하는 모습이 나타나는 걸 보면서,씁쓸함만 감돌게 된다. 그래서, 이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경주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고, 집문서를 버리고 떠나고 싶은 경주의 마음이 나는 이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