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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무지에서
백시종 지음 / 문예바다 / 2021년 11월
평점 :

미사리 집에서 3대에 걸쳐 머슴과 주인으로 동숙했던 승철이네 일기는 하남시장을 석권하고 있던 일본인 청과물 상회 임시 일꾼으로 일자리를 얻었고, 식구를 거처도 시장 근처로 정하는 바람에 분이도 승철이도 그쪽 학교로 옮겨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25-)
"하나같이 민둥산이지요? 가까운 산도 그렇지만, 더 깊은 산도 자꾸 도벌되어 민둥산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온통 산야가 하나같이 벌얼겋습니다. 비가 웬만큼 와도 흙모래가 밀려 내려와 하수도를 막히게 합니다. (_73-)
조수익의 증조할아버지 조철상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명사수였다. 명실공히 조선 총잡이 중에 가장 이름난 포수였다.
포수 모임의 우두머리였다. 총을 들었다 하면 실수가 없었다. 백발백중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 역시 총잡이들은 한량이가 마련이었다.열이면 여덟이 백수였다.(-130-)
어쩌면 최선을 다해 석방운동에 심혈을 기울였지만 마음먹은 대로 풀리지 않았는지도 몰랐다. 그만큼 조수익의 석방이 어려웠다는 얘기도 되지만, 한편으로 최일선에서 활동하는 두 젊은 권력가가 힘을 합하면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안 될 일이 없었는데도 그것을 끝내 이루지 못한 것은 또 다른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적용되었을 것으로 해석된다. (-190-)
그러니까 김달제가 무서워하는 대상은 그의 아버지 김 대감이 유일한 셈이었다. 한데 한 사람이 더 생겼다. 다름 아닌 홍덕금이었다. 그녀는 남편의 못된 행실을 바로잡기 위해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행동에 나섰다. 바로 시아버지 김 대감에게 남편의 탈선을 시시콜콜 고자질한 일이 그것이었다. (-237-)
그날 새벽 덕금이는 칠봉이가 내민 손을 잡고 새벽 내내 다리고 또 달렸다. 오랫동안 준비한 탈출인데다가 청군 병사들이 술추렴 때문에 일찍 기상하지 못했으므로 그들이 알게 되어 수색견을 풀었을 때는 벌써 몇 시간 이상의 간격을 벌려 놓은 상화이었다.
게다가 솜털 찢어 놓은 듯이 알 굵은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어서 발자국마저 바로바로 지워 없애 버리는 것이었다.이런 경우를 두고 하늘이 돕는다고 하는 것일까. (-263-)
한데 그는 오로지 자기 혼자 살겠다고 , 자기 개인 영화만 누리겠다고 바로 나눈 동지도, 낭라와 민족을 위함이라고 큰소리쳤던 기개도 , 그 많은 서약도 하루아침에 깡그리 팽개쳤던 참으로 그 속을 알 수 없는 엉큼하고 음흉한 배신의 남자....사람의 탈을 쓰고서는 할 수 없는. 아니,해서는 안 되는 최후의 보루까지도 헌신짝인 양 내던진, 어쩌면 인간 말종이나 진배없는 그 자가 지금 이곳을 향해 오고 있다니. (-305-)
원래 그 주변이 모두 외할아버지 소유였지만, 그 어른이 필생의 업으로 전력투구했던 반민특위 활동이 수포로 돌아가고, 되레 법으로 보장받았던 건전한 국가기관이 불법으로 와해되고, 주변 인물이 살해되고, 결국 무산되면서 그 많던 토지가 헐값에 넘어가는 수모를 당한 것이다. 아니,어쩌면 이승만 정권에 반기를 든 보복으로 빼앗긴 땅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불시에 반기를 든 보복으로 빼앗긴 땅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불시에 쫒겨난 곳이 지금 창고가 있는 챠소밭 자투리 땅이었다. 어머니 이름으로 등기되었다가 문제의 엄나무에 목을 매도 나서 명희와 병희에게 상속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었다. (-339-)
앙상한 손으로 도널드의 등을 다독거리며 조수익이 계속했다.
"내 눈은 못 속인다. 옥녀의 눈빛, 옥녀의 앵두입술, 옥녀의 이마...그대로 빼박았구나! 내 귀도 못 속인다. 옥녀의 음성이 너한테 그대로 스며 있는 걸!"
"아버지!"
명희가 조수익을 향해 말했다.(-377-)
경기도 영평군에는 지평리전투 기념관이 있다. 실제 역사속 의병활동을 했던 지평의병은 중공군을 물리치고 한국전쟁의 전환점이 된 중요한 전투이다. 그 전투에 대해서 모티브로 삼고 있는 소설 <황무지에서>는 5대에 걸친 ,독립운동가 자손으로 알려진 웅천 조씨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총을 잘 쏘았던 조철상, 조철상의 아들 조춘수와 손자 조영걸, 그리고 증손자 조수옥이 있다.조수옥은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그가 겪었던 비극적인 역사를 한편의 소설에서 역사적 대서사시를 형성하고 있다.지평한의원을 운연하였던 웅천 조씨 집안은 한 마을의 땅 대부분을 소유했던 부잣집이었다. 그랬던 집이 풍비박산나게 된 것은 조수익의 아내 옥녀가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했던 엄나무에 목을 맨 사건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조수익의 집안은 풍비박산 나게 되었고, 가문이 소유했던 땅은 일제에 의해 몰수되고, 다시 재분배된다.
소설은 양반이 현존했던 조선시대에서, 일제시대로 넘어가고, 나라의 개벽이 일어난 시점에서, 안옥녀가 마을의 거대한 엄나무 밑에서 목매 죽었고, 한국전쟁을 종식되고,이승만 정권이 들어서고, 4.19 학생운동 이후, 박정희 군사세력이 등장하게 된 그 과정에서 , 한 가문의 역사와 맥을 같이하게 된다. 명포수이며, 호랑이를 잡으로 산을 타넘었던 조철상의 가문은 조수익의 두 딸,조명희와 조병희 대에 이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조수익은 반민특위에 연루되었고,종신형에 처하게 된다. 스스로 비겁한 삶을 살지 않겠다는 의지가 한 가문의 비극과 희극의 전환점이 된 것이다. 수몰되었던 토지의 권리는 추후, 조춘수의 증손녀 명희, 병희 자매에 이르르게 된다.5대에 걸친 역사가 양평군 지평의병 속에 내재되고 있으며, 독립운동가의 삶이 행복한 삶은 결국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