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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로부터의 탈출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21년 12월
평점 :

사부로는 갑작스레 분노를 느꼈다. 무엇에 분노한 건지는 본인도 몰랐다. 기억력이 시원치 않은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 걸까. 아니면 자신을 포함하여 그와 같은 노인들을 바보 취급하는 이 시설의 시스템에 화가 난 걸까.' 혹은 노화라는 현상을 생물에 부여한 신에게 화가 난걸까. (-24-)
몇 미터 앞에 가느다란 실이 수평으로 쳡져 있었다. 지면에서 30센티미터 정도의 높이였다.
몇 킬로미터를 나아갈 때마다 이 같은 덫과 마주쳤다. 우선은 피해갈 수 있는 길이 없는지 확인한다. 피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137-)
"물론 진짜 인간은 아니야.진짜 인간을 만드는 건 34원칙에 위배될 우려가 있거든. 진짜 인간은 인간에게 위험하니까 못 만들어. 인공지능이 만드는 건 안전한 인공지능 로봇이지. 안식처에서 너희를 돌보는 그런 로봇. "(-188-)
"일본어판?"
"일본어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농담이라는 말씀인가요?"
"읽어보셨나요?"
"어릴 적에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어른이 된 후로는 읽어본 적이...."
"그건 그림책 아니었나요?" (-252-)
"기억을 봉인하는 것도?"
"괴로운 기억은 없는 편이 낫잖아?"
"괴로운 기억이라니?"
"예를 들면 지금. 지금 괴롭지?"
"너희들 탓이야." (-284-)
지구에서 사부로, 도크,밋치가 등잔하는 소설 <미래로부터의 탈출>이다. 이 소설의 장르를 꼭 찝어 물어 본다면 SF 소설의 범주에 들어간다. 인류와 인공지능 AI가 공존하는 세계관,그 중심에 사부로가 있다. 로봇의 3원칙 중에서, 인간다움을 보존하는 1원칙,2원칙, 3원칙이 함께 하는 미래의 세계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앞으로 인간은 무엇을 하고 살아가야 하는지, 인간이 마주하고 있는 분노의 근본에 대해서 접근할 수 있었다. 소설은 점점 더 기억이 사라지는 사부로의 내면을 엿볼 수 있다. 노화를 스스로 느껴야 하고,어느 덧 자신의 나이가 100세가 되었다. 물리적인 한계를 넘어선 사부로 앞에는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두려움과 공포가 함께하고 있다.알고리즘과 간결함과 명료함을 가지고 있는로봇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호함과 맞서고 있다. 인간의 모호함이 언어 속에 고스란히 채워져 있다면, 로봇은 그렇지 않았다. 변이 인류가 생겨나고, 그 안에서 사부로에게 주어진 역할, 협력과 연대의 가치가 점점 더 사라지는 인류의 모습을 보게 된다. 즉 이소설은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 인공지능이 단순히 인간을 보조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약인공지능이 강인공지능의 형태로 진화하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상황에서, 사부로의 모습 너머에 존재하는 불안과 공포, 스트레스의 형태는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스트레스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몸은 멀쩡하지만, 서서히 기억이 잠식되어지는 상황에서, 인류의 계획은 인공지능 로봇의 계획과 경쟁하게 되고, 서로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충돌할 여지가 있다. 미래로 가는 것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어느 정도 시점이 되면, 인류 스스로 기술의 덫에서 벗어나야만 인류가 생존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소설이며,그 가치를 느낄 수 있다.작가 고바야시 야스미의 마지막 유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