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있는 계절
이부키 유키 지음, 이희정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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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카는 학생회장 후지와하가 만든 '고시로를 돌보는 모임' 멤버 열여섯 명과 함께 부실 의자를 모아 대화의 자리를 만들었다.
부실 구석에서는 하야세가 교복 윗도리를 벗고 카키색 작업복을 입었다. 옷을 다 갈아입자 자리에 앉아 이번에는 쓰레기통을 끌어오더니 그 위에서 거은 막대기를 나이프로 열심히 깎았다. (-38-)


<홍백가합전> 은 끝나고 <가는 해 오는 해>를 하고 있었다. 분위기를 바꾸듯이 어머니가 쾌활하게 말했다.
"어머, 유카. 슬슬 약속 시간 아니니?"
유카는 눈물을 닦으며 일어났다. (-66-)


"그 사흘은 평생 잊지 못할 거야,삿짱."
절친들이 부르는 억양으로 이름을 부러 놀랐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대답도 못하는 사이에 아이바는 떠나갔다. (-159-)


고시로는 시노의 발밑에 몸을 숙여 냄새를 맡았다.
유카가 다니던 무렵 여학생들은 긴 치마에 양말을 세 번 접어서 신었다. 그 뒤로 스커트가 해마다 짧아져 작년에는 맟핌내 무릎이 보이게 되었다.
스커트가 짧아지는 한편, 양말은 자꾸자꾸 위로 오라갔다. (-208-)


"고시로는 아마 백네트 뒤에서 자고 있을 거예요."
이 목소리는 고돌모의 나카하라 다이스케다.
안경을 쓴 그느 역대 하치고 남하생 중에서 가장 머리가 질다.어깨까지 기른 머리카락에는 곱게 윤기가 흐르는데, 아무래도 빗질할 때 빗을 다루는 독자적인 방법이 있는 듯하다. (-271-)


"선생님,사진 짝어요."
일회용 카메라를 든 손을 유카가 재미있다는 듯이 보았다. 
"머지않아 휴대전화나 PHS에도 카메라가 달려서 나올 거래."
"사진 찍을 일이 그렇게 많을까요?"
"있으면 찍겠지. 넌 사진도 잘 찍을 것 같아. 좋겠다. 그림에 재능이 있는 사람은." (-324-)


영화 접속이 생각난다. 아날로그적 정서가 디지털 정서로 번환되는 과도기에 우리는 그 때만 해도 디지털 문명이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꿀 지 감지하지 못하였다. 공중전화 앞에서 줄을 서고 ,추운날 밖에서 전화를 기다렸으며, 일회용 카메라를 통해 밖에서 사진을 찍는 즐거움이 있었다. 사진 한 컷 한 컷이 소중했던 그 시절의 우리의 삶의 변화가 어떤 정서를 우리 삶에 채우게 되는지,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며, 내 삶의 가치관의 신념의 근원을 고찰하게 되었다. 


 주인공은 '고시로'다. 미에현 욧카이치시 긴데쓰 하치료 고등학교에 다니는 하야세 고시로와 , 학교에 들어온 하얀 개 고시로이다. 주인을 기다려도 찾지 않는 떠돌이 개 고시로를 교내 학생들열여섯이 돌아가면서 키우기로 한다. 4월 봄에 피는 벗꽃이름을 뜻하는 유카와 하야세 고시로가 서로 사랑이 싹트게 된 건 고시로를 돌보는 모임, 고돌모가 교내에 생긴 이후였다.


소설은 1988년부터 2019년까지 하야세 고시로의 삶의 변화와 성장과 가치관을 정립해 나가는 전과정을 디테일한 부분까지 묘사하고 있었다.사람에게 친근한 개 고시로, 곁에 존재하는 4월을 뜻하는 향기나는 이름을 간직하고 있는 유카, 교내 아이들은 틈이 나는 데로 고시로를 돌보고 있었다.그랬던 고시로의 일상은 해마다 바뀌게 되고, 서로 헤어지는 순간이 찾아오게 된다. 하야세가 키웠던 고시로가 어느덧 이별할 수 밖에 없었으며, 어린 개였던 고시로는 서서히 노령견이 되고 있었다.


소설에서 눈여겨 볼 것은 기술의 변화가 우리 삶의 내면적인 정서를 어떻게 바꿔 놓는지에 있다.필른카메라,일회용 카메라는 있어도, 디지털 카메라는 없는 세상에서, 그 시대에는 카메라로 사진을 많이 남기고 찍는다는 걸 상상하지 못하였다. 필름 한 통에 24매를 담아낼 수 있었고, 그것을 인화하기까지 하루 남짓 시간이 소요되었다.시간의 간격으로 설레임과 그리움이 있었던 20세기가 어느덧 , 설레임의 가치를 망각하게 되는 21세기가 찾아오게 된다. 아날로그적 시간은 그리움을 기억하고,고독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된다. 하야세 고시로와 시오미유카에게 너무나 당연한 일상들이 어느덧 기술의 변화로 인해 기억 속에 망각되고 있는 모습이 관찰된다. 1999년세기말,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에 대해서 두려워 했던 지난날이 소멸되고, 우리는 어느덧 신기술에 도취하여, 과거의 순수함을 놓치고 있음을 감지할 수 밖에 없었다. 추억과 계절을 느낄 수 있었던 그 시절과 오로지 스마트폰과 사진찍기에 열중하고 있는 현재의 우리들의 모습, 무엇이 사라지고,무엇이 생겨났는지 알게 된다면, 우리가 궁극적으로 회복해야 하는 삶의 가치, 복원되어야 할 인생의 계절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고, 삶의 가치를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깨우치게 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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