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젠가
이수현 지음 / 메이킹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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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본가가 있는 친구들에 비해 생활비는 곱절로 들어갔고, 가난하다는 것은 불편함을 동반했다. 세상은 말 그대로 불공평했다. 집안의 든든한 지원을 받으며 알바를 하지 않아도 되는 동기는 매 학기 성적 장학금을 탔으며, 나는 늘 학업과 알바를 병행할 수밖애 없었다.지붕이 높고 큰 벽돌 이층집 자녀들의 일일놀이 선생님이 되었다가, 이제 갓 태어난 시추의 펫 시터가 되기도 했다. (-17-)


내가 있는 홍콩 지사에서 구십오 층을 배정해줬어. 침구부터 인테리어, 조명, 제공되는 음식까지 모두 최고급이야.이 멋진 공간과 야경을 자기와 하께 즐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는 그렇게 말하며 슬픈 이모티콘을 덧붙였다. 오늘 저녁 식사는 최고급 바닷가재와 어린 송아지를 잡아 만든 스테이크야. 방금 막 셰프가 함께 곁들여 먹으면 좋은 1등급 와인을 갖다 주었어. (-73-)


나 사실 ,너와 함께 달팽이를 키우며 깨달은 게 많아.우리에게 이런 상황이 닥칠지 어느 누가 알았겠어. 갑작스러운 코로나 여파로 잘 다니던 직장에서 갑자기 해고를 당학로 , 수입이 없어져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밤잠 못 이루고 ,평소 하지도 않았던 일을 도전하는게 분명 무척 낯설고 혼란스러울거야. 나 역시 이렇게 조각나고 처참히 망가질 줄 생각도 못했거든. (-140-)


아버지가 외로이 걸어갔을 그 길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빵을 대하는 아버지의 진심과 철학을 공유하고 싶었다. 유기농보리쌀 반죽에 미숫가루를 아낌없이 넣는 모습, 일련의 정성스러운 과정을 거쳐 팥소를 만드는 모습, 깨끗이 씻은 글판 위에 반죽을 부어 노릇노릇 구워내는 모습 등 빵집의 공식 계정에는 빵과 관련된 사진과 동영상이 매일 올라갔다. (-159-)


단편 소설 네편이 모여져 있는 <유리 젠가>에는 <시체놀이>,<유리젠가>,<달팽이 키우기>,<발효의 시간>을 소개하고 있다. 각각의 소설은 2020년, 2021년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의 모습들을 면밀하게 관찰한 작가의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을 느낄 수 있으며, 부서지고 조각나는 우리 가정의 한 단면을 기록하고 있었다.


작가는 우리 사회의 약자의 모습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그들이 어떻게 견디고, 적응하고, 이겨내는지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살아가되, 존재하게 되고, 그 존재 속에서, 내 삶을 반추하게 된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낸 어떤 일이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흔들었던 걸 보자면, 이 책에서 던지는 작가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명확하게 분류하고 있으며, 이 소설에서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내 삶에 대한 성찰도 바뀌게 된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들과 마주하는 것을 감수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건, 평생 갚아야 하는 대학 입학 학자금에 대한 걱정,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과 죄송함 때문이다. 어떤 이는 부모 잘 만나서 사고를 쳐도, 돈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법의 보호를 받기는 커녕 법의 보호에서 벗어난 이들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불공평한 것은 결코 부모를 잘 만나지 못한게 아니었다. 대한민국 사회 전반의 시스템이 기득권에 유리한 형태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같은 상황이 나타나도,누구는 벌벌 떨게 되고, 누구는 당당하게 행동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작가는 보드게임의 일종인 유리젠가를 보여줌으로서, 언제 쓰러질 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모습, 밑장 하나 잘못 빼서, 모든게 파괴되는 그러한 모습들을 ,유리젠가에 은유적으로 대한민국 사회의 현 주소, 대한민국 사회의 민낯을 하나 하나 느낄 수 있고,기억할 수 있게 된다.취업 걱정, 부모님 걱정에 힘겨워하는 청춘의 자화상, 그로인해 꽃피지 못하고 시들어 버리는 청춘의 슬픈 내면의 자화상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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