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살아있다 - 찾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시인의 모든 것
민윤기 지음 / 스타북스 / 2021년 10월
평점 :
절판


 


하늘, 바람, 별, 시를 싣고 물길 따라 흘려보냈을 것도 같은, 그 어린 아이 동주가 띄운 배는 수많는 배가 되어 지금 우주 한 가운데 은하되어 흐르고 있을 것 같은, 그렇게 머릿속에 박혀들기 때문이다. (-8-)


죽은 자는 더 이상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시집을 남겼다. 도쿄 시절의 작품은 불과 5편이며 게다가 그 중 1편은 뒷부분은 소실되었지만, 이것만이라도 어둠에 묻히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94-)


그러니까, 감옥에서 써서 김윤입이란 친구에게 보낸 엽서에 적은 시가 윤동주의 마지막 작품이 된다는 것이다. 윤동주가 쓴 사실과 그 작품을 받은 사람까지는 확인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윤동주의 친 누이부부가 보관자에게서 직접 듣기까지 한 것이다. 다만 안타깝게도 작품 자체를 알수가 없는 것이다. (-192-)


그 길로 시체실로 찾아가 동주를 찾았다. 관 뚜껑을 열자 "세상에 이런 일도 있어요?"라고 동부는 내게 호소하는 듯했다. 사망한 지 열흘이 되었으나 규슈제국대학에서 방부제를 써서 몸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281-)


이 평론은 윤동주의 시에 대한 최초의 연구 결괍물로서, 윤동주 시의 애면의식과 심상 ,그리고 심미적 요소들을 일제 암흑기 극복을 위한 실존적 몸부림으로 파악, 윤동주 연구의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주 컴컴한 시간 속에서 무한내전을 피할 수 없을 때 의식은 한층 절대적 반하에 가까운 것이다. (-379-)


시인 윤동주는 이 땅에서 태어나 일제의 파쇼적 탄압이 극심했던 1934~1942년 사이에 주옥같은 불멸의 시를 쓰고도 8.15 해방을 눈앞에 두고 일제 감옥에서 순절한 민족의 자항시인이다. (-455-)


1943년 5월,나는 교토 구치소에서 붉은 수의로 갈아입고 이원구 동지와 함께 포승에 굴비처럼 묶여서 수갑을 찬 채 용수를 쓰고 후쿠오카 형모소로 이감되었다.이 형무소에 온지 1년 여가 지난 1944년 초여름의 오후였다. (-534-)


소년 윤동주가 소학생 시절에 탐독한 잡지는 서울에서 발행하는 '어린이'였다. 이 잡지의 편집 책임자는 소파 방정환이었는데, 그냥 심심풀이 흥미삼아 보는 잡지는 아니었다. 소파 방정황는 이 잡지를 통해 식민지 치하에서 고통받고 자라나는 식민지 조선 어린이들의 감정, 비애의 실체를 보여주고는,그럴수록 더욱 분발하자며 은연중에 장차 다가올 미래에는 빼앗긴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는 사상을 고무하고 부추기는 글들을 많이 실었다. (-590-)


저항 시인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에 태어나 1945년 2월 16일에 세상을 떠났다.삶의 언저리 끝에서 민족시인으로 남게 된 윤동주 시인의 각별한 삶,그 삶 속에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암울한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살아있어도 살아있지 못한 비참한 현실을 견뎌내야 했던 저항 시인 윤동주에 대해서,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일본의 학자들 사이에서도 관심이 뜨거웠음을 이 책을 통해 재평가 되었다. 


그가 떠난지 어느덧 70년이 넘은 긴 시간이 흘러왔다. 해방과 동시에 시작된 대한민국의 시대적 사명감은 그의 삶의 주기와 일치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1주년은 윤동주 사후 1주기라고 보면 된다. 대한민국의 아픔과 윤동주 시인의 운명은 서로 일치하고 있었으며, 민족시인으로서의 당위성을 확보하고 있었다. 즉 그가 마지막 죽음의 순간, 그 끝자락에 놓여진 삶에서, 그의 마지막 남겨 놓은 말과 생각, 언어를 듣고 싶은 이들은 점점 더 늘어나게 된다. 그와 함께 수감생활을 했던 이들의 증언을 확보하려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내 삶과 비교할 순 없지만, 윤동주 시인의 죽음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과정에서, 다시는 대한민국을 외세에 뺘앗기지 않아야 하며, 대한민국 스스로 자주국가로서의 당위성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윤동주의 삶을 통해 회고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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