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 - 이상국 문학자전
이상국 지음 / 강 / 2019년 12월
평점 :
품절



동해별곡 7

산의 동해에 밤이 오고 달빛 푸르면
어린 게는 걸어가는 법을 배웁니다
걷는 법이야 어미 게와 어린 게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만
모래 위 나란히 그어진 발자국을 볼 적마다
산은 돌아와 울었습니다.
신과 신의 애비 또한
이 바닷가 달빛 속을 그렇게 걸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주 저물어 적막해지면
동해가 물결 한 자락으로 
그들 슬픈 발자국을 덮어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19-)


내 가는 길의 모든 검문소에서

젊어서는 그랬다.
대대리 삼거리에 버스가 멈추면
죄 없이도 가슴이 방망이질했다.
권총 찬 경관이 경례를 올려붙이며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하면
난느 까닭없이 오줌이 마려웠다. 

화진포 삼불사로
어머니 사십구재 모시러 가던 그해 겨울
수염이 거칠고 수상해 보인다고
나는 사정없이 정강이를 걷어차였다
돌아가신 어머니도 아무 소용없던
심수년 전 그 조국의 국도

마흔이 넘은 지금도 그렇다
그 삼거리에 아직 바스는 어김없이 멈추고
엠식스틴 움켜쥔 헌병이 통로를 훑어오면
나는 뭔가 불어야 항 게 있는 것 같다

내 가는 길의 모든 검문소에서 
오늘도 나는 가슴이 뛴다. (-41-)


진부령

내 스무살
저 지랄 같은 새벽
아버지 소판 돈 몰래 들고
서울 가는 디젤버스 기름냄새에
게처럼 헐떡이며 넘던 영.
그 큰 소 다 털어먹고
춧헉명절 달 그늘만 믿고 돌아오던 날
먼지 낀 차창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면목없는 얼굴을 비춰보다가
고개발량 이르면
그만 눈물 나던 영. (-71-)


나는 늘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했다. 그때 내가 생각한 안과 밖은 어떤 세계였을까. 그것은 어떤 제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어떤 중심에서 멀리 있다는 소외 의식 같은 것. 혹은 대학을 나와 근사한 직장을 갖는다든가 맛있는 연애를 한다든가. 동해 바닷가에서 근근이 처사적 글쓰기를 하며 얻은 이른바 '향토문인'이라는 '레테르'를 떼어내는 일, 이런 게 아니었을까.? 거기다 기댈 문학의 선배나 터놓고 지낼 도반이 없다는 것. 대강 그런 외로움도 있었을 것이다. 


생이 있으면, 멸이 있다. 멸이 있으니 생이 있는 것이다. 시인의 세계관은 끊임없이 생과 멸을 지속적으로 은유적으로 전환시켜 놓게 된다. 삶을 성찰하고, 과거의 삶과 현재를 이어가는 과정에서,미래의 비전을 시상 속에 채우게 된다. 시인이 압축된 단어로 다섯가지 오감을 담아내려하는 욕심이 끝없이 이어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시인 이상국, 그는 지금껏 일곱편의 시집을 내었고, 삶이 시인이며, 직업이 시인이며, 생과 죽음조차 시인으로 기억되길 원한다. 


한 편의 시 속에 과거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것들,익숙한 기억들을 현재로 앞당겨 놓고 있었다. 어미 게와 아기 게의 생존에 대한 욕구 분출, 지금은 할 수 없었던 과거 그 시절에 가능했던 소를 팔아 인생을 고쳐 먹겠다는 의지는 결국 그 나약한 의지마저 꺽이고 ,되돌아 올 수 밖에 없는 시인의 한계가 시집 한 켠에 채워지고 있다. 그리고 어느 지역에나,어느 고개에나 있는 그 검문소에 대한 공포와 불안, 이제 그것또한 아련한 추억이 되고 말았다. 소백산 정상 언저리에 있는 죽령 희방사 검문소가 흔적만 남아있을 뿐, 그 검문소를 배경삼아 인스타에 사진을 올리는 젊은 청춘을 보면서, 베이비붐 세대 어른 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 것인가 상념에 잠겨들게 된다. 


이 책에는 시집하나에 삶의 한 순간이 겹쳐지고 있었다. 흔적이라는 것은 기억이고,추억이며, 누군가의 현재이다. 그리움과 외로움은 그렇게 채워지게 된다. 작은 게와 어미게의 현재는 누군가에게는 관찰의 대상이 된다. 그 생명이 남겨놓은 흔적은 파도 한순간 지나가면, 소멸되어 지고, 오로지 관찰자인 그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게 된다. 살면서 내 앞에 놓여진 나 자신의 흔적들이 생멸 속에서 지금까지 고고하게 이어져 올 수 잇었던 것은 누군가 기억하고, 누군가 관찰하고, 누군가 기록했기 때문이다.여기서 나는 관찰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시인 이상국처럼 시를 쓸 것인가, 지금처럼 서평을 통해 기록할 것인가의 선택은 나의 자유로운 표현속에 내재되어지는 것이었다.살아가되 잊지 말아야 할 것, 살아지되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 더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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