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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트 - 왜 혐오의 역사는 반복될까
최인철 외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1년 9월
평점 :

당시에 발발했던 스페인독감의 영향이 외국인, 이주자들에게 책임을 물리는 혐오현상으로 이어지게 됐고, 이것이 포퓰리즘 정치, 나치 정권을 등장하게 만든 중요한 계기가 됐다는 분석을 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굉장히 비슷하죠.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아시아인 특히 중국인 혐오가 확산되고 있고 민주주의가 부흥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려옵니다. 실제로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와 혐오범죄 사례들이 계속 보고되고 있습니다. (-63-)
경제 불황, 범죄, 재난, 전염병 등이 발생하면 외국인들이 원인을 초래했다라고 비난하면서 이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인권 침해를 정당화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나는데 그 시작에는 늘 혐오표현이 있습니다. (-73-)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고 , 1929년의 대공황을 지나며 독일 국민의 3분의 1이 실업자가 됐는데 이런 상황에 대해 누군가는 책임져야 했습니다. 그런데 책임질 사람이 안 보여요. 그러다 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유대인을 지목했고, 그 유대인들이 결국 희생양이 된 거죠. 팩트는 중요하지 않았죠. (-128-)
박물관의 구성과 전시는 당시 유대인들이 겪었던 혐오와 차별, 그리고 폭력의 참혹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줍니다. (-146-)
넬슨 만델라는 인종차별 역사의 고리를 끊고자 과감한 도전을 합니다. 대통령으로 집권한 후 백인들에 대한 복수나 보복이 아니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전 구성원들이 함께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려고 노력합니다. (-195-)
그리고 1994년 비극적인 사건이 시작됩니다. 르완다와 인접국의 분쟁을 종식하고 평화협정을 추진하기 위한 노력에 동참햇던 르완다와 부룬디의 두 정상이 암살된 것입니다. 르완달와 부룬디는 인접한 국가로서 소수의 투치와 다수의 후투사 살고 있어 국민 구성 또한 비슷했습니다. 이 두 국가 정상이 함께 타고 돌아오던 전용기가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의 공항에서 미사일 공격을 받고 추락합니다. (-203-)
프로이센이 서로 힘을 합쳐 신성동맹(Heilige Alliaznz)이란 것을 결성했죠. 보수적이고 그리스도적인 유럽을 저 불온한 혁명의 무리들로부터 지켜내겠다면서 이룬 동맹이었는데요. 러시아 혁명에 대해서도 유사한 역풍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파시즘의 등장입니다. 1920년대 이탈리아에서, 그리고 1930년대에 스페인과 독일에서 파시즘 또는 나치즘이 등장하게 되는 거죠. (-262-)
'온라인에서는 다 그래' 라는 잘못된 규범의 인식이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온라인에서도 그런 행동은 용납될 수 없다는 것. 온라인도 실체를 가지고 있는 오프라인의 다른 한 면이라는 점, 현실로 존재하는 사람들이 현실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대화를 나누고 메시지가 교환되는 곳이라는 인식이 필요해요. (-335-)
코로나 19 이후 ,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혐오, 헤이트 현상이 간헐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 확진이 늘어나고, 지역 곳곳으로 확산되면서, 코로나 확진자들의 행동과 태도가 바르지 않다고 말하면서, 혐오발언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 과정에서 여러가지 사회적인 문제들이 발생되고 있다. 죄책감을 사회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현재 우리들의 모습이 보여진다. 코로나 19는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그 안에 숨겨진 여러가지 사회적 원인을 분석해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혐오가 제노포비아로 이어진 경우가 많았다. 과거 홀로코스트로 인해 죽음을 맞이했던 유대인 학살, 유대인은 홀로코스트를 대재앙이라는 뜻으로, 히브리어로 쇼아shoah 라 부르고 있다. 즉 혐오가 대재앙으로 이어진다는 걸 보여즌 단적인 예이며, 아르메니아 대학살도 비슷한 상황에서 만들어졌다. 지금 사회적으로 불고 있는 이스람포비아도 역사적으로 혐오가 전쟁으로 이어진 케이스다. 이런 혐오를 부추기는 것은 인종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이후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인종은 과학적인 개념이 아니며, 인간과 인간,나와 타인을 구분하는 전환점이다. 즉 인종은 혐오와 분노,차별의 원인이 되고 있으며, 폭력을 당연시하고 있다. 상대방에게 혐오적인 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현상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어지게 된다. 얼마전 설리의 죽음 이면에는 온라인 혐오 발언이 있으며, 그걸 인지하지 못한 네티즌의 문제점이 사회적 문제로 이어지면서,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 상태이다. N번방, 소라넷 처럼 온라인 혐오 및 사회적인 성범죄는 혐오를 혐오로 해결하랴 하느 단적인 우리의 나쁜 민낯이 나타나고 있다. 물론 이런 모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고 있었으며, 혐오와 자본이 결탁된 독특한 현상이 그대로 표출되고 있다. 코로나 19 이후, 우리 사회의 분노와 혐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항상 어떤 사건이나 대형 사고, 전염병과 같은 예고되지 않은 어떤 사건들인아 사회적 문제가 나타나면, 저으이와 민주라는 이름으로 혐오발언을 하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