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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 스쿨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92
이진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0월
평점 :
갑자기 한 아이가 사진을 띄웠다. 무슨 사진인지 알아볼 틈도 없이 여러 장의 사진이 연달아 떠올랐다. 사진에는 하나같이 내 모습이 찍혀 있었다. 교실에서 엎드려 자는 나, 멍하니 창밖을 보는 나,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버릇처럼 손등을 긁는 나, 하나같이 못나고 부끄러운 모습 뿐이었습니다. 내가 찍으라고 허락한 사진은 단 한 장도 없었다. (-17-)
이러니까 너하고 나, 왕따를 당하는 거야. 알아들어?
무례하게 결론부터 '왕따' 로 마무리하는, 상대 기분은 아랑곳없이 자기 할 말만 하는 스타일이 오히려 왕따를 자초하는 건 아닐까.' 동호는 문득 경수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63-)
해서와 연미의 뒷모습을 보며 지금이라도 빠져나갈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둘밖에 없는 친구들마저 잃게 될 것이다. 노래방 도우미를 하자는 말을 먼저 꺼낸 것은 연미였다. '당연히 같이 가야지. 필요할 때만 같이 다니면 그게 친구냐?' 연미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꺼내는 '그게 친구냐?' 라는 말은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친구라면 모든 것을 함께해야 한다. 설사 살인일지라도. (-91-)
달빛을 받은 비석 위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은 지난번과 같은 검고 큰 뱀이었다. 재우가 뱀에게로 다가가고 있었다. 뱀이 몸 위로 올라가자 드러누운 재우는 신음소리를 냈다. 인나는 질투심을 느꼈다. 학교에서 키스한 적도 있고 인나가 재우의 손을 끌어다 자신의 가슴에 댄 적도 있지만 재우는 시큰둥했다. 그런데 지금의 재우는 몹시 만족한 것처럼 보였다. 인나는 근처에 있던 돌을 집어 그들에게 던졌다. (-139-)
한숨이 절로 나왔다. 사실 기회만 주어진다면 우리 학교 학생 중 절반 이상은 아마도 대니 최의 뒤통수를 후려갈겼을 거다. 학교에 폭력이 일상화된 것은 묵인 속에서 이뤄진 대니 최와 그 일당의 짓거리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학생은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에 숨도 크게 못 쉬고 지냈고, 폭력이 아무렇지도 않게 구사되었다. 군대에서도 구타가 사라지는데 학교에서는 만연하고 있는 셈이다. 막막함에 무심코 하늘을 바라봤다. 가로등 바깥의 희미한 어둠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진짜 하늘에서 떨어졌나?" (-189-)
청소년 소설 <마이너스 스쿨>이다. 이 소설은 다섯 작가의 다섯편의 단편소설이 있으며, 주제는 학교 교내 폭력이다. 학교 교내의 보이지 않는 왕따 문제,그 왕따 문제는 서로를 문제시하고,도외시하고 있었다. 숨쉴 수 없는 그 공간에서 나타나는 여러가지 제반적인 사항들, 그것이 이 소설 곳곳에 스며들고 있었다. 우리는 학교 폭력에 무감각하며, 때로는 자극요법을 얻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 보이지 않는 암묵적인 왕따 동조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학교 뿐만 아니라 SNS 에서도 보여지는 노골적인 외면과 심리적으로 멀어지는 현상들,그런 현상들 뒤에 숨겨진 친구들과 함께 해온 시간들이 감춰진다.
즉 그들은 의심하고, 걱정한다. 친구라는 무리 안에서, 보여지는 다양한 모습들,어른들이 해 왔던 것을 모방하고, 때로는 답습한다. 그 안에서 우리는 여러가지 제반 사항들을 고려하면서 일을 진행하려 하면서, 왕따에서 벗어나려는 기회, 패자부활전을 기다리는 희망고문에서 벗어날 수 없는 모습이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학교 교내에서 공부하는 것 뿐만 아니라,또래 친구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여러가지 모습들이 있으며, 때로는 멀어지고,때로는 가까워지는 관계 속에서 여러가지 선택과 결정을 하고, 그러한 삶의 패턴들은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형태로 바뀌고 있다. 즐거운 학창시절을 꿈꾸지만, 그것이 쉽지 않는 이유, 그 하나하나 짚어 나갈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