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의 불시착
박소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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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번호래요. 휴대전화 번호도 바꿨나봐요."
나는 부서 단톡방을 확인해보았다. 이미 시준은 나간 상태였다. 오늘 새벽 5시에, 그리고 시준의 카톡 아이디는 '알 수 없음'이 되어 있었다. 계정을 아예 탈퇴했다는 의미였다. 그때쯤이 되자 나는 아까 시준의 책상에서 느꼈던 묘한 이질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책상 위가 완벽히 깨끗했다. 컴퓨터 모니터와 전화기, 카카오 라이언 캐릭터가 그려진 각 티슈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민 대리는 시준의 책상 서랍을 열더니 '어머!' 라는 외마디 소리만 외친 후 입을 막고 말을 잇지 못했다. (-13-)


"알고 보니 나는 사람들에게 후원을 부탁하는 것도, 굿즈를 만들어 파는 것도 , 후원자들을 관리하는 것도, 빠듯한 예산으로 동동거리는 것도 다 안 맞는 사람이었어.오히려 질색인 사람이지. 내가 좋아한 건 누군가를 도와주는 존재가 된다는 사실과 그걸 고마워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을 때 느끼는 알량한 뿌듯함 정도였던 거야." (-73-)


"자, 3kg 상자입니다. 얼마나 나올까요? 네, 3.1kg. 놀랍습니다. 다음은 5kg 상자인데요. 이준 선수. 잠시 망설이더니 포도송이 하나를 바꿉니다. 자 ,얼마인가요? 놀라지 마십시오. 정확히 5.0kg 입니다.!" (-151-)


"무슨얘기요?"
"아니, 경찰에서 연락이 와서 저희 A 아빠가 뺑소니로 신고가 됐다는 거예요.정말 너무 당황스럽더라고요.A 아빠가 선생님 다치신거 보자마자 달려가서 챙겼다는 제 말이죠. 아마 누가 잘못 신고한 것 같은데 선생님이 경찰서에 설명하셔서 오해를 풀어주셔야 할 것 같아요." (-237-)


팀장은 약속을 지켰습니다. 그 이후로도 비슷한 설명을 두 번 더 해줬고, 마지막에는 제가 직접 그리며 설명하도록 한 후 빈 곳을 틈틈히 채워줬습니다. 그리고 베테랑 선배 한 명을 제 보조로 (네,선배가 제 보조였습니다.) 붙여서 굵직한 업무를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해 보도록 했죠. 그러다 보니 자신도 붙고 일이 재미있어졌습니다. 그게 벌써 오래전 추억이 되었네요.(-209-)



자기계발서 <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말합니다>를 쓴 저자 박소연 작가는 이 번에 하이퍼리얼리즘 소설<재능의 불시착>을 출간하였다. 이 소설은 저자의 전작과 흡사한 직장인과 직장인, 사회의 트렌드, 성공과 실패 속에 좌절하는 직장인의 희노애락을 엿볼 수 있으며, 과거와 다른 형태의 MZ 세대 직장인의 특징을 총 여덟편의 단편소설에 묶어내고 있었다. 이 소설은 미술 장르 하이퍼리얼리즘의 개념을 문학 장르로 이끌었고, 부모 세대와 다른 자녀 세대들이 직장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직장에는 원칙과 매뉴얼, 절차가 있다.그리고 수직적인 관계도 존재한다. 통제와 관리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 서열 구조가 직장 내의 기본 원칙이다. 하지만 소설 <재능의 불시착>은 그런 당면한 현실에 대해서 저항하고 있었다. 자신의 권리가 분명 직장 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쓸 수 없는 사회의 모습에 대한 저항감, 반항심리가 숨어 있었다. 도덕보다 관행보다,원치과 매뉴얼 ,법을 중시한다. 첫번째 소설부터 그런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다. 직장에 들어가고 사직서를 쓰는 건 직장인의 권리이다. 그런데 회사는 그걸 허용하지 않으려는 이중의 매뉴얼이 존재하고 있었다. 주인공은 회사의 권리보다 자신의 권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MZ 세대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으며, 직장에서, 회사가 정한 방침에 따라가지만, 사퇴,사직에 있어서 만큼은 조금도 양보하려 하지 않는다. 그런 모습들이 이 소설 속에 고스란히 기재되고 있었다. 


두번째, 재능의 불시착에는 타인의 시선으로 볼 때는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그 재능이 우리 사회에 널리 쓰여지지 못하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시장 가치가 없는 재능은 일회성 이벤트에 불과하며, 작가는 그것을 재능의 불시착이라고 우회적으로 부르고 있다. 과거 철학이라는 학문 장르가 재능의 불시착의 대표주자가 아닌가 싶다. 철학의 고루함이 철학과를 나오면 철학 선생님 이외에는 할 일이 없다는 우스게 스러운 이야기가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그 부분을 짚어내고 있다. 


단편 소설 하나에 ,노령견 코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반려견은 가족일까,아니면 단순히 동물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에 대한 고민과 걱정을 드러내고 있었다.주인공의 기준으로 볼 때 노령견은 분명 나의 가족이다. 그러나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이 충돌한다. 하지만 사회에서, 반려견은 가족이 아닌 동물일 뿐이다. 즉 직장인으로서, 반려견을 가족의 범주로 취급할 때 생기는 충돌과 갈등,인식의 문제가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 소위 반려견의 죽음에 대해서, 내 가족의 문제라고 사회에 어필하면,그 어필이 받아줄 가능성이 낫다는 걸 보여주는 현실적 리얼리즘이 고스란히 나타나는 단편소설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이야기, 그러나 결코 웃을 수 없는 이야기가 이 소설에 내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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