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모자를 쓴 여자 새소설 9
권정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새벽 2시가 되었을 때 민은 몽유병에 걸린 것처럼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누가 이끌었던가. 훗날 민은 그것이 자신도 알 수 없는 어떤 미혹이라고 정의 내렸다. 그 이끌림은 창문 밖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어떤 소리가 들린 건 아니지만 민은 약간의 답답함을 느껴 베란다로 나가 창문을 열었다. (-9-)


"축하합니다. 아들이에요."
간호사가 인사를 건넸을 때 민은 눈도 뜨지 못한 은수를 품에 꼭 끌어안으며 눈물을 글썽였다. 형제들과 나이 터울이 커 외롭게 자란 탓에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이 벅찰만큼 기뼜다. (-34-)


고양이가 아닐 수도 있어... 
민은 자신이 까망이를 죽여 땅에 파묻었고 그 고양이가 예수처럼 부활하여 교회 쪽으로 도망쳤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92-)


민은 남편의 자동차를 수색할 생각에 골몰했다. 최대한 자연스러워야 한다. 만약 자신이 의심받는 걸 안다면 남편도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름 뒤 마침내 기회가 왔다. 남편이 목욕타에 간 일요일 오전 ,민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남편이 벗어놓고 간 바지 주머니에 열쇠를 꺼냈고 그 즉시 주차장으로 향했다. (-151-)


"보시다시피 여기 모자가 있습니다. 이제 저는 이 모자 속에서 무언가 귀여운 것을 꺼낼 예정입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그리 대단한 마술은 아니죠. 분명 어딘가에 숨겨 두었다가 꺼낼 거라고 여러분은 이미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마술사가 조금 더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211-)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이었다. 민은 새벽까지 책을 읽다가 아침에 겨우 잠이 들었다. 눈을 뜨자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거리엔 어둠이 내리고 먹구름 낀 하늘에선 흰눙이 나비처럼 떠다녔다. 민은 어두컴컴하던 거리가 흰색으로 뒤덮여가는 걸 교회 유리문 뒤에 서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248-)


나는 모든 밤과 모든 시간 속의 너를 기억해" 책의 서두에 적혀 있는 자가의 의도가 반영된 문장이다. 소설가 권정현 씨는 <검은 모자를 쓴 여자>를 통해 주인공 민과 민의 아이 은수를 보여주고 있으며, 소설 속 이야기는 우리 삶 깊숙한 곳을 들여다 보게 된다. 민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무당과 미신을 선택하게 되었으며, 부적을 가까이하게 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은수의 부재는 민에게 트라우마였다. 내 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 속에 내몰린 민은 결국 남편 몰래 자신만의 세계관에 빠져들게 된다. 민이 느끼는 불행, 민늬 서러움 뒤에 감춰진 폭력과 공격성, 나의 소중한 것의 부재는 또다른 부재를 낳는다. 은수의 부재는 은수가 있어야 그 부재가 채워지고 그 과정에서 민은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온전한 삶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결국 회복되지 않는 시간과 노력, 그것이 은수의 삶의 희노애락에서 고통에 해당되는 부분이었다. 즉 삶의 발자취, 생에 대한 고민들, 은수의 부재를 동수로 채우려 하는 민의 불안한 심리변화가 그의 집착과 트라우마에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소설에서 불행과 공격성은 서로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 미스터리한 어떤 사건, 그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은수의 깊은 상흔, 삶에 대해서, 죽음에 대해서 깊은 고찰을 하게 되었고, 내 삶에 내밀한 곳을 들여다 보게 된다. 철저히 무언가 꾸미고, 자연스러워야 하고, 계획적이어야 한다. 소설 속에 민의 삶을 통해서 우리의 불행이 있었고, 걱정과 근심이 담겨져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