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시대의 기록 2
박원순 지음 / 역사비평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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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시대의 고문 체계와 관행은 구조적으로 이승만 정권에 그대로 연결되었고, 그것은 또한 일제의 간악한 고문 통치와 이어졌다. 바로 일제의 경찰 체제와 고문제도가 우리 사회 고문 유산의 시원이 되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남미 군사정권의 고문과 국제적인 배교도 하고, 우리의 왕조시대나 세계사에서의 고문을 함께 비교 서술하고 싶었지만 너무 분량이 많아져서 영국의 노던 아일랜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자행된 미국의 고문 사례, 고문방지협약을 비롯한 고문에 대응하는 국제적 사례들을 정리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13-)


어린이를 고문해 말썽이 났던 고창 경찰서의 유영준 형사가 이번에는 절도당한 피해자를 허위 신고했다고 고문하고 거짓자백까지 받아냈다. 하지만 진짜 절도범이 잡히는 바람에 진실이 밝혀졌다. 얼마나 고문당했으며 자신의 돈을 잃고 자신이 허위 신고했다고, 말도 안 되는 자백을 했겠는가. 그런데도 이 사건은 불기소되어 피해자의 부친이 다시 항고까지 했다. (-118-)


1948년 1월경 검거당했다. 누가 무슨 고문을 얼마만큼 받았다 해도, 아마 나만큼 받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다. 장장 1주일에 걸쳐 고문을 당했다. 집에서 잡혀서 고문을 시작했다. 나무토막을 다리 사이에 꽂아서 양쪽으로 사람이 앉아서 시소처럼 타고서 고문을 했다.소라껍데기를 바닥에 깔아서 그 위에 앉혀놓고 , 뼈가 다 상했다. 조천지서에 가니까 쇠좆매로 때리고, 물고문을 엄청나게 하고, 하여튼 초죽음을 당한 것이다. 그 다음에 제주경찰서로 가서 잠을 안 재우는 고문을 했다. 고문의 종류를 말하자면 엄청난 고문을 당했는데 비행기 타는 것,전기고문, 뜨거운 물고문,이루 말할 수 없다. (-237-)


중앙정보부는 간첩단사건와 조작 사건을 자유자재로 , 무소불위로 만들어냈으며 그 모든 사건에서 고문의 호소와 주장이 이어졌다. 이미 검찰과 사법부는 중앙정보부가 고문으로 조작 송치하는 사건에 대해 무혐의 또는 무죄로서 대응할 힘과 의지를 잃은 지 오래였다. 인권옹호기관 또는 인권의 최후 보루라는 명칭은 이제 더 이상 이들 기관에 어울리지 않았다.정치권력의 무한질주에 제동을 걸 기관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 수많은 억울한 시민들이 정치권력의 야욕과 정보기구의 희생양이 되어 신음하고 있었다.'박정희 시대' 야 말로 인권이 실종되고 고문이 번성한 시기였다. (-314-)


남하한 친척에게 포섭되어 이적행윌흘 해왔다는 혐의로 일가족 12명이 구속되었다. 김태룡 씨의 가족은 1979년 6월 15일 영장도 없이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과 춘천 경찰청 대공분실에 불법 연행되어 36일간 불법구금을 당했다. 그 과정에서 성명 불상의 수사관 10여 명으로부터 전기고문과 물고문 등을 당해 하루에도 3~4회 기절을 했다. (-386-)


노덕술은 1899년 6월 1일 태어나 1968년 4월 1일 사망했다. 이근안은 1938양 3월 21일 태어나 지금까지 생존하고 있으며, 지금은 현역 목사이다. 이 두 사람은 고문기술자이며, 한 사람은 일제시대에, 한사람은 박정희 시대에 고문기술자로서, 고문과 조작에 앞장서게 된다. 1945년 생 이재오, 1947년생 김근태, 1952년생 이해찬,이들은 학창 시절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고문을 당했던 정치인들이며, 죽음을 불사하고 살아온 인물들이다. 일제 시대가 끝나고, 미군정이 도래하면서, 친일 고문의 주역이었던 경찰들이 미군정 시대의 통치의 수단으로 움직이게 된다. 죄를 인정하지 않으면,고문을 통해 자백하였고,그 자백의 결과가 사법살인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그것은 잔인하고 야만시대의 표본이며, 과거의 역사가 아닌 앞으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역사이기도 하다. 죽어서 다시 태어난다는 것, 비행기 고문, 폭력, 억압, 전기 고문, 물고문, 여기에 잠 안재우고, 목을 겨누는 그런 고문들은 일주일 내내 이어졌으며, 고문 휴유븡으로 평생을 살아가게 되었다. 손가락 사이에 볼펜, 나무젓가락, 다양한 도구를 사용해, 손가락을 꺽어 관절을 못 쓰게 하는 고문을 하였고, 공중에 매다는 고문, 물을 지속적으로 넣어서, 목의 기도까지 물이 차는 상황에 직면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다. 경찰과 검찰의 조작은 고문으로 죽은 이들을 심장마비로 사망불명으로 바꿔 세상 박으로 내놓았다. 무혐의가 이어지는 것은 불가능하였다.고문이 시행될 수 밖에 없는 조건이 있었고,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정권 때 고문이 자행되었던 건, 자신들의 통치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야만적이었고, 인권이 유린된 상황, 여성의 몸을 나체그대로 고문하였던 그 당시의 모습들, 남영동 대공분실, 그리고 반민특위, 4.3 제주도 4.3 사거까지, 우리의 근현대사 속에 고문이 있었고, 그 고문은 죄를 만들고, 죄를 통해 공포와 두려움으로 이어지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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