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새겨진 장면들
이음 지음 / SISO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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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머무르면서도 , 여러 곳을 다녀놀 수 있었다.
나는 이곳에 돌아왔지만, 무언가는 돌아오지 못했다.'

이 말은 내게 깊은 자국을 남겼다. 어쩌면 내가 글을 쓰게 된 이유일지도 모른다.

내가 여분의 시간을 사는 도안, 몇몇 과거의 시간이 다가와 어렴풋한 기척을 남긴다. 긴 시차를 두고 다시금 떠오르는 이유는 아직 할 말이 남았기 때문일 것이가. 듣고 싶은 말이, 남은 마음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5-)


나는 무엇이든 여분을 마련해 놓는다. 삶의 리듬이 망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어제와 오늘, 일상과 일상의 이음매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려면 꼭 여분이 필요하다. 여분이 없다느 말은, 무언가로 대체해야 한다는 말이고, 삶의 한 과정을 생략해야 한다는 뜻이다. 때문에 내게 여분이 있다는 건, 상당히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오늘도, 어제와 같겠구나. 별 탈 없이, 무사히. (-45-)


"제가 어제 책을 봤거든요?"

나는 지선 씨가 나를 위해 뭔가 애쓰려 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지선 씨는 그런 사람이었다. 행도이나 마음가짐에 있어서,자래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불순물이 없는 사람이었다. 

"소설이었는데, 고양이 이야기가 나오더라구요."
"고양이요?" (-54-)


효진이 걸음을 슬며시 옮기며 끄덕였다. 그러곤 정면의 민주를 향해 카메라를 맞대 찍어주었다. 찰칵, 비록, 그 소리가 작아 들리지 않았지만 둘은 자신이 어떤 공간과 시간에 단단히 새겨져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감각이 싫지 않았다. (-94-)


"오새 별일은 없냐."

아버지가 대뜸 내게 안부를 물어왔다. 나는 그 말이 약간 겸연쩍어 '없다' 고 대답했다.그러곤 아버지의 답을 받아 그대로, 몸은 괜찮은지, 요새 힘든 일은 없는지를 물었다. 우리는 서로 괜찮고, 별일 없다는 식으로 둘러댔다. 사이가 사이니만큼, 실은 별 내색을 하지 않아도 짚이는 구석이 있었지만, 우리는 자세히 묻지 않았다. 아버지는 가볍게 흘리는 농담처럼 '이 나이에 별일은 죽는 일밖엔 없다' 고 천연스럽게 반응할 뿐이었다. 그러곤 마지막으로 나지막이 덧붙였다.

"믿는다." (-123-)


내가 태안을 찾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다름 아닌 애인과 이곳에 다시 꼭 오고 싶었다. 처음 태안에 온 것은 두 해전 겨울이었고, 취재차였다. 막연한 불안감에 몸서리치던,내겐 유독 어렵고, 힘든 시절이었다. 그때, 나는 일상이 불규칙했다. 많은 사람을 만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내 직업에 관해서든, 금전적인 보상에 관해서는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없는 상태였다. 하루하루가 마치 난해한 문장처럼 느껴졌다. 쉬이 와닿지는 않지만 어떻게든 이해하고 싶었고, 그 무의미한 속에서 각별한 의미를 건져내려 애쎴다. (-164-)


한겨울이었지만 춥지 않았고,주위는 밝았으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방은 죽은 듯 조용했다. 텅 빈 고요 너머론 해가 점차 기울었다. 굳은 결신을 다진 사람처럼, 급격히 인상이 어두워지며 바르게 젖어 들었다.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어스름이 천천히 자라났다. 시간이 어김없이 흐르고 있었다. (-183-)


자가 이음은 책의 소개란이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말하는 걸 잫하지 못하지만 귀기울여 듣는 것만큼은 누구보다도 자신있다고 생각한다' 라고 쓰여져 있었다. 보편적으로 자신의 스펙과 경험, 이력을 올리는 것에 비해 작가는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자신의 성향만 살짝 언급할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나에게는 낯설음이 아닌 친숙함으로 다가왔다. 나 또한 저자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생각이 많고, 내 안에 질문을 쏟아내,끊임없이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내는 것이 저자의 인생 가치와 나의 공통점이었다. 이 책은 그동안 내 마음 속에 간직했던 그 질문들 중에서 세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고 있었다. 바로 무지와 무관심, 무념이다.


살다보면 우리 삶이 내 뜻대로 되는 경우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일상에서 도시인으로 살아가는 이들보다, 농촌에서 흙과 가까이하는 이들은 그걸 피부로 느끼고 있다. 도시인들의 사고와 다르게 시골의 삶은 자연친화적이며, 기후와 날씨에 의존하기 때문이다.그래서 농사를 짓는 농부들의 삶이 어느 순간 바닥으로 떨어질 때, 빚을 갚아야 하는 그 순간, 빚을 더 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한 해 농사를 한 순간에 망치느 순간이다. 이 책은 그 상황을 적절하게 제시하고 있었고, 그 당사자의 운명에 대하여 당연한 듯 당연하지 않은 답안을 제시하였다.위기를 극보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여분이라느 가치에 있다.


돌이켜 보면 이 책을 읽게 되면, 우리의 삶을 이해할 수 있다. 누군가를 전적으로 믿고, 그 믿음을 굳이 전면에 내세우지 않더라도, 서로가 그 믿음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충분히 따스해질 수 있다. 별일 없이 살아가고, 믿음을 가치 판단의 최우선으로 놓는 것, 그것이 우리 삶의 근본이며, 내 삶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에너지가 될 수 있다.때로는 무언가 얻기 위해서, 스스로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고, 때로는 기회가 찾아와 따스한 숭늉을 들이켜야 하는 상황도 나타날 수 있다.도전과 용기 뒤에 감춰진 리스크, 그것이 내 삶의 운명의 전환점이 될지라도,그 전환점에 나의 운명을 내맡기는 상황도 나타날 수 있다. 스스로 불순물이 없는 사람이라 자처하는 이들의 삶은 여리고, 약하고, 보듬어주어야 하는 존재이다. 그걸 알기에 서로 안고 가고, 그들의 삶을 보호하려는 심리도 우리에게 잔존하고 있다. 때로는 스스로 불순물이 되기도 하고, 스스로 순수한 결정체로 남고자 할 때도 있다. 합리적인 선택은 없지만,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은 가질 필요가 있다. 한권의 에세이집을 통해서,나를 돌아보게 되었고, 내 삶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내 삶에 긍정적인 면을 삶의 가치 판단으로 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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