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우에노 스테이션
유미리 지음, 강방화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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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R 우에노역 공원 출구 개찰구를 나와 횡단보도 건너편 은행나무를 둘러싼 돌담에는 늘상 노숙자들이 앉아 있다.
그곳에 앉아 있을 적에는 부모를 일찍이 여읜 외아들 같은 심정이었지만, 후쿠시마현 소마군 야사와마을을 떠나본 적이 없는 내 부모는 둘 다 아흔이 넘게 살아 천수를 누렸고, 1933년에 내가 태어난 이후로는 대략 2년 간격으로 맏딸인 하루코, 둘째 딸 후키코, 둘째 아들 히데오, 셋째 달 나오코, 넷째 딸 미치코, 셋째 아들 가쓰오, 넷째 아들 마사오, 이렇게 동생 일곱 명이 줄줄 태어났고 막냇동생인 마사오는 열 네살 어렸으니 남동생이라기보다는 거의 아들뻘이었다. (-13-)


아침이 되었다.
고이치가 죽고 나서 다섯 번째 아침이었다.
고이치가 죽기 전에는 늘 눈꺼풀 안에서 잠이 깨어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고 지금이 언제인지를 인지하고 나서 눈을 떳는데, 고이치가 죽은 이후로는 고이치가 죽었다는 사실이 나를 흔들어 깨웠다. (-80-)


문상객 받기, 장례식, 고별식, 발인, 화장, 유골 줍기, 환골 법회, 사망 신고, 쇼엔지와 이웃들에 인사하기, 보험증 반납과 연금 수급 정지 등의 절차 밟기, 유품 정리, 사십구재 법회, 납골-,내가 하는 일들과 나 자신이 계속 동떨어진 상태로 하나씩 세쓰코의 죽음과 관련된 일을 처리해갔다. (-132-)


쓰나미는 솔숲 위에서 부서지고 흙먼지를 일으키며 배를  휩쓸고 나무를 꺾고 밭을 쓸고 집을 부수고 마당을 허물고 자동차를 삼키고 묘비를 쓰러뜨리고 집 지붕, 벽의 나무토막, 유리창, 배 중요, 자동차 기름, 테트라포드, 자동판매기, 이불, 다다미, 변기, 난로, 책상, 의자, 말, 소, 닭, 개, 고양이, 사람,사람, 남자, 여자, 노인, 아이-.
6번 국도를 달려오는 차가 있었다. 운전하는 건 손녀딸 마리였고, 조수석에는 허리가 긴 고타로가 앉아 있었다.(-181-)


1996년 풀하우스를 쓴 제일한국인 유미리의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의 과거를, 일본의 사회적인 변화를 고찰한다. 1933년생인 주인공은, 아시아의 중심지로 부각되고 있는 일본의 성장과 맥을 같이하고 있었다. 1964년 도쿄 오림픽이 개최되었고, 전세계 2위의 부유한 나라로 거듭나고 있었던 일본의 다양한 모습을 찾아내고자 한다. 그 하나하나 일본이 간직하고 있는 것들을 놓치지 않고 있다. 


소설의 앞 부분에 보면 '나는 갈 곳도, 있을 곳도 없는 사람을 위해 글을 쓴다' 고 말한다.이 부분은 반겨주는 사람도 없고, 자신이 머물러 있는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 갈 곳은 도쿄 우에노가. 그곳에는 자신과 동질감을 느끼는 노숙인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다. 1964년을 정점으로 일본은 서서히 성장하였고, 1990년대 버블이 터지면서 경제적 손실이 이어지고 있었다. 일본이 안고 가야하는 현실적인 제약 조건들, 일본 대지진, 그리고 일본 사회의 모순적이 상황들이 일본인들에게 공허감만 안겨주게 되었다. 작가는 이 부분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일본이 안고 가는 부정적인 사회적 맥락이 앞으로 한국이 안고 가야 하는 사회적 맥락과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문제가 일본 사회 내부에 정처없이 떠도는 노숙인들이 생겨났듯이 우리 또한 거기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1964년 도쿄 올림픽과 2020년 도쿄 올림픽 개최를 마주하는 그 심경이 잘 표현되고 있었다.


 
*이 글은 컬처블룸 카페를 통해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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