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과 뱀과 소녀를 시인동네 시인선 159
권순자 지음 / 시인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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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돌

물가에서 짱돌을 찾아
수십 번 수 백번 물속으로 서러움과
울분의 날개를 날려 보냈다.

짱돌은 거칠게 물 위를 날아오르다가
첨벙첨벙
물속으로 제 몸무게를 이기지 못해
아리고 덜 자란 몸을 쑤셔 박고 말았다.

물수제비로 수면을 네댓번 
가볍게 제 몸을 날려 물결 잔등을 튕기어
새도 아닌 것이
새라도 되고 싶어서
돌응, 날개를 피고 날아갔다.

물결도 
돌이 뜨겁게 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안다는 듯
손바닥으로 받쳐주고
제 품을 열어 멀리 흘러가 주었다.

낮게 날던 제비마저 
돌을 물고 비상이라도 해주고 싶었을까

물결을 뜨겁게 끌어안고
돌은, 자글거리며 흘렀다. (-15-)


구두

고통의 쓸모에 대해 생각한다.
꿈틀거리는 맨발의 눈물을 기억한다

밑창은 닳아서 흙과 친하고
골목길 술 냄새는 시큼한 발바닥과 친하다.

낡아서 반들반들한 웃음들
한때 개가 덥석 물어재낀 자리는
선명하게 제 흉터를 드러내고 찡그린다.

고통의 쓸모에 대해 생각한다.
찡그리는 흉터는 거짓말할 필요가 없다
저릿한 기억을 떠올리지 않아도
찟긴 자국은 보는 이의 어깨를 서늘하게 한다.

고통은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다.
마음의 빗장을 열고 물처럼 스며드는 것이다.
맑은 눈동자를 흐리게 하고
연둣빛 이파리를 키우는 것이다.


짓무르다가 아물어 날카로워진 이빨이
단단한 눈빛을 드러내고 있다. (-51-)


달빛 사과밭

스무 살에 부석에 갔네

사과나무에서 돋아난 하얀 별들이 나를 불러냈네

지친 몸으로 문을 나서면
달빛 흰 손이 어깨를 쓰다듬어
낯선 무릉도원으로 
날개를 달고 날아갔네

소음마저 아늑해지는 시간이었네
하얀 동불에 깔리는
재잘 거리는 달빛과
사과꽃 향긋한 언어에 취해버렸네

스무 살 푸른 눈매가
무릉으로 인도한 날이었네. (-103-)


1986년 포항문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시인 권순자님은 다수의 시집과 수필집을 써내려가게 된다. 시가 가지는 고유의 의미, 시의 몸짓, 시를 통해서 ,내 삶을 어떻게 표출하고,시를 통해서 내 삶을 이야기하고, 시를 통해 어떤 주제와 어떤 내용을 함축해 나가는지 생각하게 된다. 그중에서 나에게 마음이 와닿았던 세가지 주제, 짱돌과 고통, 부석이다. 짱돌은 작가의 어린 시절 친숙한 놀이였다. 이 시가 꽃혔던 건 요즘 넷플릭스 1위 오징어게임 열풍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 줄다리기 등등의 친숙한 전래놀이 뿐만 아니라,짱돌을 이용한 수제비 뜨기가 있다. 돌을 날아다니는 새로 , 제비로 표현한 것이 상당히 인상적으로 남아있었다. 무거우면 가라앉고,가벼우면 날아다니는 그 이치, 작가는 자연의 이치에 시적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있었다.



두번째, 고통이다. 구두에 고통이라는 단어로 채우게 된다. 구두 속에 숨어있는 삶의 고단함, 피곤함, 여기에 덧붙여 삶을 기록하고 있으며,인간의 고통의 실체,민낯에 접근해 나갈 수 있었다. 구두는 고통의 화두이다. 아프지만, 결코 아프다 말할 수 없는 상태,그런 상황을 우리는 고통이라 말한다. 구두를 신고 있는데, 발가락과 발가락 사이에 작은 돌과 모래가 뒤섞인다면, 그 자체가 고통이 될 수 있다.시가 가지는 가장 임팩트한 부분이 여기에 있다.


세번째, 부석이다.시인은 부석을 언급하기 전 시집의 제목 전면에 '달빛 사과밭'이라 병명하였다. 실제 부석은 영주시 부석면 소재이며, 이 시에서 부석은 부석사 주변의 경치이다. 해가 지는 그 순간 부석사는 부석사의 느낌을 살려낸다. 시인은 그 상황, 노읊에 지고, 내 몸을 감싸는 붉은 빛을 '달빛 사과밭'이라 붙이고 있다. 실제 부석사 인근에는 사과밭, 은행나무가 많이 있는 곳으로서, 극락낙원의 표본으로 생각한다. 시인은 그것에 대해서, 영주시민조차 놓치고 있었던 부석사 고유의 경치를 자세히 담아내고 있었다. 이 시집의 백미가 <달빛 사과밭>에 두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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