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화이트 웨이브 틴틴 시리즈 1
송기원 지음 / 백조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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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꿀이네는 팔자걸음 흉내를 내며 천천히 안방을 지나쳤다. 그러자 어떻게도 표현할 수 없는 한 가닥 기쁨이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오소소, 퍼져갔다. 꺼꿀네로서는 중풍을 맞아 안방에서 자리보전이나 하고 있는 훈장댁은 그야마로 이빨 빠진 늙은 호랑이에 불과할 뿐이어서 더 이상 무서워하거나 겁먹을 필요가 없었다. (-18-)


"그래, 나는 당달봉사다. 그러는 너는? 이 문둥이야."
끝순이의 입에서 문둥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이번에는 대복이가 끝순이를 향해 화살처럼 달려들었다. 끝순이가 봉사라는 말을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처럼 대복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말은 문둥이라는 말이었다. 
"죽일 테야." (-55-)


어쩌면 자기도 엄마를 보고 싶어하는 마음이 너무 깊어지면 정님이처럼 미친병이 걸릴지도 몰랐다.
양순이가 정님이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외숙모 꺼꿀네의 심부름으로 빨래할 때 쓰는 양잿물을 사러 장터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양잿물에다가 보리짚 태운 아궁이의 재를 섞어 주먹만큼 덩어리를 만들면 빨래는 물론 세수나 목욕을 할 때 쓰는 비누가 되는 것이었다. (-100-)


양순이가 의아해서 올려다보자 꺼꿀아범은 다시 한 번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고는 말했다. 
"양순이 너도 알다시피 우리 집안 형편이 몹시 어려워졌다. 아직 봄이 오기도 전에 벌써부터 양식이 간당간당하구나. 에후, 앞으로 닥칠 보릿고개는 또 어떻게 넘길지 도무지 가늠이 서지 않는다." 
양순이 또한 이미 형편을 잘 알고 있던 터라 달리 뭐라고 말을 보탤 수가 없어서 잠자코 있자 꺼꿀아범이 말을 이었다.
"저번에도 말했다만, 아무리 곱씹어 생각해도 네 어미는 이미 죽은 사람이다. 양순이 너도 어느 정도는 포기한 눈치여서 더 이상 네 어미에 대한 말은 하지 않으마." (-144-)


양순이는 반드시 그 끈이 있어야 멈 훗날이라도 그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끝순이하고 연결되어 있는 어떤 끈, 대복이하고 연결되어 있는 어떤 끈, 정님이 언니하고 연결되어 있는 어떤 끈.
양순이가 혹부리와 연결된 어떤 끈을 보다 확실하게 느긴 것은 한 달이 지난 후였다. (-179-)


소설 <누나>의 주인공은 양순이,끝순이, 대박이다. 엄마 없이 혼자 커가는 미친병에 걸린 엄마를 둔 양순이, 끝순이는 앞을 보지 못하지만, 세상을 읽는 후각과 청각을 가지고 있었다.그리고 문둥이 엄마와 함께 하는 대박이가 함께하고 있는 가메뚝이다. 가메뚝에 살고 있는 양순이, 끝순이,대박이는 서로의 낙인,주홍글씨를 긁고 있으면서, 서로 연결된다. 아픔을 노골적으로 언급하면서, 주홍글씨를 쑤시게 되는데, 그것은 서로의 상처를 바라보는 해석이기도하다. 대박이는 결국 자신의 꿈을 저버리고,각설이가 되었고, 구걸을 하면서 ,연명하게 된다. 이 소설에서 대박이의 닥한 삶을 보면, 우리에게 처해진 현실을 이해할 수 있다. 가뭄 속에 풀칠하기 바빳던 그 시절을 반추하고 있다.소록도 나병환자, 한센인이라 부르는 이들이 대박이의 엄마가 안고 가야 하는 삶이다. 그런 삶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삶의 굴레, 결국 대박이의 삶은 대박이의 엄마의 삶의 굴레 속에 갇혀 버리게 된다.


이 소설은 작가의 시선, 작가의 세대를 감지하게 된다. 일제시대를 지나, 해방 후 지금은 거의 쓰여지지 않는 표현들이 소설 속에 함축되어 있었다.누군가의 아픔을 들추는 것은 슬픔이면서, 깊은 상처가 된다. 그러나 그 상처를 보듬어 안는 것도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이다.대박이와 끝순이, 양순이가 살아가는 방식이 소설 속에 느껴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아픔을 견디고, 슬픔을 안고 가는 것, 요즘은 쓰이지 않는 문둥이, 미친병과 같은 표현이 등장하고 있었으며, 누나로서 엄마 없이 살아가는 양순이의 삶이 상당히 고단하였음을 깨닫게 된다. 각각의 의도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는 주인공의 이름들, 배우지 못하고, 문맹률이 높았던 그 시대적인 한계 속에서,그들의 삶이 의식주를 해결하는데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된다. 차별과 편견의 벽을 허물기 위해서,어떤 노력을 하였는지, 그들의 고뇌와 욕구,기본적인 권리까지 하나 하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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