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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만으로 완벽했던 날들 - 남편이 없던 엄마와 아빠가 없던 딸의 애틋한 러브스토리
진아 지음 / 담다 / 2021년 9월
평점 :
겨우, 스물 셋, 엄마는 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을 했다.
엄마는 좋게 말하면 순진하고, 나쁘게 말하면 고지식한 사람이었다. 첫 연애 상대였던 아빠와 당연히 결혼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 그렇다 해서 엄마의 첫 연애가 대단히 아름답지도 않았다. (-18-)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는 딸에게 '부러운' 마음을 느꼈을 엄마, 고작 열일곱 살이었던 딸에게 자신의 손을 잡아 달락도 부탁했던 엄마, 엄마의 쓸쓸함과 외로움이 이제야 보였다. 그때의 나는 엄마의 일기를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 그냥 그런가 보다 했을 것이다. 엄마의 절박한 마음을 이애하기에 그땡틔 나는 너무 어렸다. (-81-)
나는 방식에서 자주 어긋나는 딸이었다. 호기심은 넘쳤지만 끈기는 부족했고, 덜컥 저지르고는 수습하지 못하는 일이 허다했다. 그런 내 모습과 아빠의 부재에는 어떠한 상관관계도 없었다. 하지만 세상의 시선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던 엄마로서는 그냥 마냥 걱정스러웠을 것이다. 허점투성이인 내가, '거봐, 아바 없는 애들은 저렇다니까!' 라는 세상의 비난에 맞서게 될까 봐. (-84-)
사실 아빠가 남긴 직접적인 피해자는 엄마였다. 나와 동생은 아빠의 얼굴도 모른 채 자랐기에 상처라는 것이 생길 틈조차 없었다. 사랑받은 기억도, 사랑한 기억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빠가 암긴 상처는 우리와 뭇관했다. 사랑하던 사람을 잃은 것도, 함께 걷기호 했던 길에 홀로 남겨진 것도, 막막한 세월 앞에 혼자 내쳐져진 것도 모두 엄마였다. 그러메도 불구하고 엄마는 우리의 마음 밭에 마음의 씨앗을 뿌리지 않았다. 씨앗이 없으니 거두어드릴 열매도 없었다. 덕분에 나와 동생은 증오와 원망이 싹틀 자리에 사랑과 감사를 키우며 살아왔다. (-97-)
얼마 전 엄마에게서 '어버이 자서전'이라는 작은 책자 하나를 선물 받았다. 그 안에는 60개 가까운 질문들이 있었는데, 엄마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빠짐없이 써주었다. 나에게 보내는 한 통의 편지와 함께, 아무 생각 없이 펼쳤다가 한 줄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덮어 버렸다. 금세 시야가 흐려져 아이들 앞에서는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다. (-137-)
요즘 나는 전에 없이 자주 침묵한다. 두 아이는 내 뜻대로 자라지 않고 남편은 내 마음 같지 않다. 울컥 , 붉은 감정이 용암처럼 쏟아지려 할 때면 꼭 그때의 엄마처럼 입을 닫는다. 그러면서 침묵 속에 가려졌던 엄마의 속마음을 알게 되었다.'지금은 너에게 화가 났으니 말을 하지 않겠다.'라거나 '마음이 풀어질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라.'라는 게 아니었다. 솟아오르는 분노와 서운함을 표현할 길이 없어, 스스로 깊은 동굴 속에 숨어든 것이었다. (-192-)
"이제는 내가 네 가족이 아니라 양서방이랑 사랑이, 봄이가 네 가족이야. 엄마한테 마음 쓰지 말고 살아, 엄마는 엄마대로 남은 생 행복하게 살 테니."
언젠가 엄마는 스치듯 말했다. 이제는 엄마의 '딸'로 매여 살지 말라고, 내가 챙겨야 할 가족에 엄마는 없어도 된다고. 그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한참을 울었다. 스물 일곱에 두 딸을 둔 가장이 되어, 평생 나와 동생을 위해 살아온 엄마가 말할 수 없이 애틋했다. (-209-)
살아가는 것이 견딜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순진함이었고, 고집이기도 하다. 희생이라는 단어, 단순히 동앗줄 하나에 의지해 온전히 자식만 바라보면서 인새의 전부를 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상상하게 되었다. 지금은 이혼이 주홍글씨처럼 생각하지 않지만, 과거 30년전에는 주홍글씨나 다름 없었다. 아빠 없는 자식,결손가정을 만들지 않기 위한 여러가지 상황들,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이 책에 등장하는 작가의 엄마는 그렇게 부단하게 애를 써왔다.
결손 가정, 그리고 또다른 주홍글씨, 생활보호대상자라는 용어가 있었다. 아파도, 자신이 무슨 혜택을 받는 것처럼 당당하지 못한 현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당당하지 못하였고, 눈앞에 놓여진 현실이 마음 아픈 기억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저자에게 아빠의 부존재는 원망이나 서러움이 아니었다. 결혼 후 단 한번도 아빠에 대한 기억이 없지만, 친구들에게 따돌림당하지 않기 위해서, 스승의 날이면, 항상 엄마의 따스한 정성이 선생님 앞에 놓여지게 된다. 하지만 그 당시엔 어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고, 마냥 부끄러웠다.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살라는 엄마의 보이지 않는 그 마음, 그것이 성장하고, 자신이 누군가의 딸이 아닌,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내리사랑은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살아가면, 견디는 것,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 그 자체였다. 누군가는 부모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누군가는 부모가 없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때로는 당연한 것으로 인해 상처를 깊게 패일 때가 있다. 한 권의 책 속에서 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살아가면서 느껴야 하는 이유없는 편견과 선입견, 그것이 자신의 삶에 있어서 족쇄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철없고, 부끄러웠던 지난 날,그 지난날이 삶을 성장하는데 큰 자산이 되었고, 삶을 견디는데 힘이 된다. 그리고 어느덧 엄마의 습관이 자신에게 고스란히 되물림 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돌이켜 보면 우리 삶은 그런 것이다. 살아가고 있지만 그 삶이 애틋하다. 실수하고, 실패해도 무너지지 않는 그 삶이, 누군가에게는 한순간에 무너지는 상황이 될 수 있다. 한 권의 책 속에 우리의 삶이 , 누군가의 삶이 기록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