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만드는 사람 - 개정보급판
마윤제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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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 무렵 서쪽 지평선 위로 콘도르 한 마리가 솟구쳐 날아올랐다. 콘도르는 긴 날개를 펼친 채 공중을 선회하더니 돌연 협곡을 향해 급강하했다. 잠시 후 새의 날카로운 일지가 짐승의 두개골을 파고드는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비상하는 새의 발톱에서 붉은 선혈이 뚝뚝 떨어져내렸다. 노인과 개들은 묵묵히 끝없이 펼쳐진 평원을 나아갔다. (-19-)


1921년 겨울, 파타고니아 남부 지역을 휩쓴 무정부주의자들이 약탈과 방화를 하며 동쪽 해안을 따라 북상하던 중 이리고엔 대통령의 진업 명령을 받고 출동한 바렐라 대령과 충돌했다. 진압군들의 무자비한 화력과 공세에 미려 도망치던 그들 중 일부가 이 교회에 숨어들었는데 벽의 총알 자국은 당시 치열했던 전투가 남긴 흔적이었다. (-87-)


얼마나 지났을까. 사람들이 일제히 동작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불의 밖에서 그들을 지켜보던 네레오는 서늘한 기운을 느꼈다. 사막 저편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한순간 사막의 하늘이 둘로 갈라지면서 돌연 빛이 나타났다. 사람들의 입에서 동시에 탄성이 흘러나왔다. 어둠 속에서 홀연히 나타난 달은 풍만하고 찬란했다. 꿈결 같은 빛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163-)


오칸은 천천히 돌아서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고사목 군락지를 지나 해안으로 내려온 그는 다시 서쪽 해안에 있는 숲으로 들어갔다. 수령이 작은 나무와 고목이 섞인 숲을 돌아다니던 오칸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가 있는 곳에서 1백여 미터 떨어진 곳에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무성한 가지를 뻗은 채 옅은 빛에 휩싸인 나무가 눈을 찌를 듯 다가왔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241-)


바람은 공기의 흐름이었다. 그것은 세상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절대적인 명제였다. 그런데 단 한사람 네레오 코르소는 그 불변의 명제를 믿지 않았다. 그는 웨나가 상상의 인물이 아니라 이 고원 어딘가에 실제 한다고 믿었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시시포스처럼 고원 곳곳을 헤메고 돌아다녔던 것이다. 
유년시절에 상상하는 환상은 성인이 되면서 저절로 깨어진다. 그러나 네레오는 그렇지 못했다. 유년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날 자신이 본 네레오의 행복은 거짓이고 허상이었다. (-291-)


안데스 산지와 파타고니아 평원이 있는 그곳 남아메리카 대륙 끝 칠레와 인접한 그곳에는 차가운 바람과 자연이 있는곳이다. 주인공 네레오, 가우초로 살아야 했던 소년은 어린 시절 푸엘체에 대한 강한 트라우마가 있었다. 바람에 날려 떠나가 버린 자신의 존재감이 서서히 저물어 가던 그 때 당시이다. 피가 터지고, 날 것 그대로인 자연의 한가운데에서, 생존을 위해서, 죽지 않기 위해서 목동으로 살아야 하는 네레오는 때로는 외롭고 고독한 존재이지만, 한편으로는 순수한 가치관을 유지하고 있었다. 즉 네레오의 어린 시절 부모님이 겪었던 정치적인 희생, 무정부주의자이면서, 아나키스트라 불리던 아버지의 존재를 지우고 싶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환상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그 시절 형의 죽음 이후 둘째였던 네레오가 콘도르가 날개를 펼쳐들고, 파타고니아 고원의 목동 가우치가 된 이유다. 즉 이 소설에서 느껴졌던 메시지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공간의 틀과 환경이나 조건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네레오의 삶이 남아메리카 파타고니아 고원 안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운명 공동체라는 것이다. 즉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해쳐나오기 위해 몸부림 치지만 스스로 덫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한 권의 책에서 느껴야 하는 삶의 가치,살아가는 이유, 그 가치가 내 삶과 부합된다는 것은 내 삶이 전환점으로 연결될 개연성이 항상 존재하게 된다. 인간을 해치는 살인 퓨마를 잡아달라는 의뢰를 받았던 네레오, 그 살인퓨마를 쫒기 위한 네레오의 여정, 이런 여정이 바람처럼 흩날리고, 고독과 외로움이 함께 공존하게 된다. 여기서 살인 퓨마의 존재,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기 위한 몸부림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긴 여정을 떠나게 되는 이유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과거 누군가 네레오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들이 내 삶을 바꿔 놓았고, 나에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믄 영향을 끼치게 된다. 살인퓨마는 네레오의 삶에서 하나의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존재일 뿐, 네레오의 발자취를 위한 도구일 뿐이다. 살아가고, 살아지는 것, 그 안에서 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스토리, 자가 마윤제가 남미에서 얻는 가치관이 무엇인지 작가의 의도와 자연에 대한 미덕이 동시에 드러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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