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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어느 날, 너의 심장이 멈출 거라 말했다
클로에 윤 / 팩토리나인 / 2021년 9월
평점 :
메스로 빗질을 하듯 살가죽을 살살 그어 내리자, 겹겹이 붙어 있던 피부들 조직들이 팽팽하게 뜯견나가며 양옆으로 벌어졌다. 흉골은 의외로 손쉽게 열렸다. 쩍 벌어진 흉골 사이를 수술용 메스가 천천히 지나갔다. 자를 댄 듯 섬세한 칼 질로 서너 겹 발라낸 끝에 이윽고 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6-)
'주디'라고 불린 그레이스, 켈리 스타일의 세련된 30대 여성이 1층에서 벽걸이 tv 만 한 크기의 캔버스를 들고 올라오는 동안, 내 맞음 편에 앉은 그녀는 혐오스럽다는 표정으로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17-)
"제4조 근로 범위, 갑의 남자 친구 역할로서 연인관계에 이루어지는 모든 일을 함께한다. 단, 갑이 허락하지 않은 스킨십을 할 경우 계약 위반으로 처리..." (-25-)
'을이 갑에게 마음을 뺏기는 경우 계약은 해지되고, 계약금은 100% 번환한다.' (-27-)
그러나 은제이에 대해 알고 싶은 범위는 내가 모르는 20년의 과거, 작은 습관, 사소한 버릇 등을 뛰어넘어 그 이상이었다. 지나치게 관심이 생겨버렸다. (-106-)
"혹시라도 갑자기 내가 죽으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가."
21살 갑 은제이, 전세계,계약금 3억원, 열흘 300만원,3억 짜리 낮은 속삭임에 다소 긴장이 풀렸다. 나는 침대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113-)
예쁘장한 글씨체로 또박또박 써 내려간 버킷리스트에는 "제1장 남자 친구와 함께하는 크리스마스","제2장 남자 친구와 함께 하는 새해맞이.","제3장 새로운 경험과 도전","제4장 나홀로 떠나는 여행","제5장 즐겁게 마지막을 준비하기 로 나뉘어 있었고, 각 장에는 세부적인 내용이 적혀 있었다. (-198-)
"나한테 반할 생각 있어?"
웃으며 제이에게 물었다.
"아니, 전혀 없어." (-211-)
제이는 해야 할 버킷리스트가 남아있다며 내보내 달라고 아우성을 쳤고, 고 여사는 자신의 딸을 퇴원시킬 생각이 없다고 했다. (-260-)
"죽으려면 남한테 피해 주지 말고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혼자서 죽어. 괜히 대낮에 시체 보고 기겁하게 하지 말고."
내 말에 입이 한 움큼 나온 그녀는 "그럼 넌 어떻게 죽고 싶어?" 라고 물었다. (-331-)
제이의 얼굴을 감싸 쥐고 입술에 입을 맞췄다.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할 시간은 이미 지나갔다. 얼음 조각처럼 차가운 입술을 녹일 작정으로 머금었다. 심장이 출구를 찾는 것처럼 요동쳤다. (-383-)
그가 가져다 준 책을 천천히 읽었다.
'인간의 몸을 가득 채운 물기는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 그것이 비의 일부가 되어 누군가의 어깨에 떨어질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한 방울의 빗물이 되어 그의 어깨에 내린다면 , 한 번쯤은 하늘을 올려다봐 줄까? (-523-)
삶이 있고, 죽음이 있다. 은제이와 전세계, 두사람은 서로에게 주어진 삶을 공유하고 있었으며, 내 삶의 발자취를 하나 하나 채워 나가게 된다. 이 소설은 웹 소설, 로맨스소설이며, 삶과 죽음에 대해서, 주인공 은제이와 전셰계의 계약관게를 느끼게 된다.
3억을 선뜻 내 줄수 있는 은제이, 그리고 그 3억이 필요한 전세계, 둘은 모종의 계약을 맺게 된다. 장기이식이 안 되면,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은제이에게는 돈은 종이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전세계는 그렇지 않다. 자신의 삶이 누군가에게 보탬이 된다는 것, 하지만 둘 사이의 계약에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갑이었던 은제이,을이었던 전세계, 갑은 을에게 요구할 수 있지만, 을은 갑에게 요구할 수 없는 불리한 관계였다. 선듯 3억을 수푷로 주었고, 둘은 100일간 계약을 맺었다. 이 계약 이외에 하루 30만원을 별도로 주는 계약이며, 100일이 지나는 그 순간 6억이 전세계 앞에 떨어지게 된다.잃을 것이 없는 온전히 전세계만의 계약이며, 은제이는 자신의 욕구,버킷리스트를 얻게 된다.
소설은 바로 이 부분을 저격하고 있다. 자본주의에 최적화된 로설이다. 지금 현대는 자본주의 사회는 돈에 의해 굴러가는 세상이다.하지만 그 돈이라는 가치조차 생명 앞에서 소멸될 수 있다. 은제이와 은제이의 엄마 고여사, 둘의 관계는 그런 관계였고, 내 삶에 있어서 여러가지 기준이 있다.불편한 상황이면, 무엇이든 돈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돈이면 모든 것이 가능한 세상, 그 안에서 돈의 잣대로 무언가 하려는, 버킷리스트를 만드는 '제이'의 세계에서, 사랑에 대해서, 그 사랑에 대한 증인이 되기 위한 두 사람의 관계, 서로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것들이 무엇인지, 둘 사이에 사랑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리고 돈이 모든 걸 결정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