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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안토니아
마리아 페이터르스 지음, 강재형 옮김 / 이더레인 / 2021년 8월
평점 :



"이것은 윌리를 위한 내 선물이야."아버지가 말했다.
어머니는 내가 왜 그것을 받아야 하느냐고 물었고 그때 아버지가 대답했다.
"오늘이 윌리 생일이야."
그날이 내 생일이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우리 집에서 생일은 그냥 넘어갔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기념일을 그렇게 보냈다. 그러나 그날은 결코 잊을 수 없다. 1912년 6월 26일, 나의 열 번째 생일날 나는 피아노를 선물로 받았다.그리고 그것은 내 생애 최고의 선물이 됐다. (-41-)
내가 한 남자에게 끌렸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대 그가 나에게 몸을 숙였다. 우리의 입이 서로 닿기 전에 내 심장이 그의 심장과 맞닿았다. 그리고 이제 그가 내게 키스를 감행했다. 나는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내 마음이 시키는 데로 내버려 두기로 했다. (-109-)
일주일이 지난 후, 나는 로빈의 권유로 타자기 앞에 앉았다. 주 네덜란드 미국 대사관에 보내는 편지가 완성되었다. 그 편지에 내가 누구인지 설명하고 나를 낳아준 어머니의 주소를 구할 수 있는지 물었다. 편지 마지막에는 내 새로운 이름으로 서명했다.
안-토-니-아-브-리-코.
고개를 드니 로빈이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157-)
"멩겔베르그 선생님? 저를 기억하세요?"
나는 그의 앞으로 다가가 지나가지 못하도록 가로막으며 말했다.
"안토니아 브리코입니다."
내 이름이 그에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그는 이미 나의 과거 이름을 잊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그에게 악수를 청했고 그가 나를 기억하기까지는 잠시 시간이 걸렸다 (-208-)
리사 마리아 마이어,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최초의 여성 지휘자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들은 그녀를 전혀 신뢰하지 않아. 심지어 마이어 부인의 남편은 오케스트라의 공연장 사용을 위해 자비로 오천 마르크를 내야 했다는구나." (-263-)
안토니아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두 번의 성공적인 연주회를 치른 후 그녀의 후원자인 로스차일드 씨의 의도와는 다르게 다시 독일로 돌아갔다. (-302-)
"당신의 영부인 방문이 뉴욕 여성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관련이 있습니까?" 진행자가 물었다.
나는 입이 귀에 거리도록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것과 관련이 있습니다.영부인께서는 조금 전 저희 오케스트라에 합류하셨습니다."
로빈이 깜짝 놀라 쳐다봤다. (-379-)
안토니아 브리코는 1902년에 태어나 1989년 8월 3일 세상을 떠나게 된다. 한국인의 유명한 음악인 하면 떠오르는 정트리오, 정명훈, 정경화, 정명화가 있으며, 지휘자, 바이올린, 첼로 연주를 하는 음악 가족이다. 하지만 안토니아가 살았던 20세기 초에 여성이 음악을 한다는 것은 큰 모험이었고, 더군다나 여성 지휘자는 쉽지 않았다.
이런 케이스를 유리천장이라 한다. 이 단어는 여성에게 주로 쓰여지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것이 아주 희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언어였다. 안토니아로 불리어지기 전 윌리 월터스였던 안토니아는 미혼모 및에서 태어난 아이였으며, 입양된 아이였다. 집에서 생일을 건너뛰는 것은 물론이며, 자신의 생일조차 몰랐던 윌리 월터스 ,부모가 사준 최고의 선물 피아노에 홀릭하게 된다.
클래식 음악의 역사에서 , 뉴욕 여성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음악 지휘를 할 수 있었던 과정, 불굴의 의지와 열정, 노력, 역리에 그 당시 자신을 후원해주었던 로스차일드가가 있었다. 이 과정 속에서 자신을 키워준 부모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던 안토니아는 실제 생부모를 찾기 위해 노력을 다하게 되었다. 스스로 성공하여, 자신의 삶과 운명을 개척한 여성 최초의 지휘자 안토이나에게 배워야 할 점은 불가능이란 없으며, 포기 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면, 남들이 나를 스스로 인정해 줄 거라는 것이다. 즉 나를 스스로 이해하고, 스스로 성장의 교두보가 되는 것, 여성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 성고의 발자취를 남겨 놓는다면, 그 발자취를 따라 누군가 새로운 도전의 희망과 꿈을 키워 나갈 수 있을 거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 삶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안토니아 스스로 보여주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