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지내요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정소영 옮김 / 엘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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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계와 우리 문명이 지속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자신이 온갖 힘들로 그것을 막아 세워 더 이상 버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 자신이 인간의 최대 적이라, 인류를 몇 번이라도 절멸 시킬 수 있는 무기들을 만들어냈을 뿐 아니라 병적으로 자기 밖에 모르느 자들이나 허무주의자, 양심이나 공감 능력이라고는 없는 사람들의 손안에 들어가도록 방치함으로써 우리 자싱이 무방비 상태가 되었습니다. (-16-)


여자가 그러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한 건 나뿐이었다.
여자에겐 자신을 방어할 권리가 있다고 다들 말했다.
바흐만에 따르면 ,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파시즘이다.
과장이다.
모든 위대한 남성 뒤에는 그 위대함을 위해 헌신한 여자가 있는 반면, 모든 위대한 여성 뒤에는 그를 끌어내리는 데 혈안이 된 남자도 있다는 앤절라 카터의 주장도 그렇고. (-81-)


윤리학 개론, 기억 안나? 교수님이 학생들을 두 명씩 짝을 지은 뒤 주어진 윤리적 주제에 대해 논쟁을 하라고 했잖아. 우리 주제는 죽을 권리였고. 생명의 신성함 대 삶의 질. 맥주를 마시며 함께 그걸 준비했잖아. 기억 나? 넌 인간은 단지 말기 환자 만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건 자신의 목숨을 끊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지. 개인이 결정할 문제이지, 누가 왈가왈부할 게 아니고,국가가 간섭할 일은 더더욱 아니라고. 그래서 그때 난 좀 불안했던 걸로 기억해. 당시 너는 우울증에 빠져 있었고, 또 아주 충동적인 일을 벌일 수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자살을 그렇게 열정적으로 옹호하는 걸 들으니 겁이 덜컥 났지. (-135-)


"이건 미친 짓이야" 눈과 목이 따끔거렸다."우리가 무슨 범죄자도 아닌데 도대체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을 권리가 있어야 하는거 아니야?"
"그렇게 될 거야. 나이 많은 말기 질환자들이 너무 많아져서 가뜩이나 위태로운 의료 체계가 완전히 무너질 지경이 죄면 말이야. 의사가 처방전을 써주고 ,약은 사기도 쉽고 값도 싸지고, 모든 게 합법적인 일이 될 거야. 다크 웹을 찾을 필요가 없는 거지." (-183-)


훌륭한 행동을 보일 수 있는 기회! 난 말할 수 없이 기뻣어. 따돌림당하는 이 가련하고 불행한 아이와 친해져야겠다. 난 내가 워낙 대단하다고 봤기 때문에. 영광스럽고도 은혜롭게 내가 관심만 보이면 그 아이의 삶이 달라질 거라고 믿었어. 아, 이 기사도적 충동에 온몸이 짜릿해지던 들뜬 기분이 지금도 느껴져. 하지만 그 아이는 그런 내 우정의 몸짓에 화답하거나 받아들이기는 커녕 내게 적대감을 보였어. 어느 날 내가 통행증을 받아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그 애가 내 책가방에 손을 댔어. (-190-)


그것이 친구가 스스로 마련한 끝이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 내가 말했다. 무론 내 잘못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게 오롯이 잘못이 있는 듯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을까?
거기 앉아 친구를 위로하면서 무엇을 해야 할 지 생각해 내려 했다. 호스트에게 뭐라고 설명하지? 끔찍이도 하기 싫은 일이었지만 한시도 미룰 수 없었다. (-211-)


가까운 이웃이나 친구에게, 가족에게, '어떻게 지내요' 라고 가벼이 인사를 건넬 때가 있다.이 질문에 대해서, 잘 지낸다고 말하면, 내 마음이 평온해진다. 반면 잘 지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할 때는 말문이 막히게 되는 , 이분법적인 대답, 정해진 대답으로 이어지게 된다. 삶에 대해서, 내 의도와 상관없이 태어나는 반면, 죽음 또한 내 의도와 상관없이 결정되는 경우가 있다. 삶의 끝자락을 집이 아닌 병원에서 마지막을 보낼 때가 있고, 나의 장례식도 비슷한 절차를 따르게 된다. 시그리드 누네즈의 소설 <어떻게 지내요>는 삶에 대한 정의와 죽음에 대한 관조, 시간과 공간에 갇혀버린 인간의 마무리되어지는 여행길을 따라가 볼 수 있었다.


소설은 췌장암 말기암에 걸려 죽음을 앞둔 주인공과 그 주인공과 여행을 떠나는 친구 이야기가 동시에 언급되고 있었다. 삶과 죽음, 죽음을 앞둔 친구가 같이 여행을 떠나자고 한다면, 이 소설에 등장하고 있는 주인공처럼 할 수 있을까 곰곰히 질문하게 된다. 주인공의 말기암, 그 순간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옹호하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에는 ,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 자기 존엄에 대한 문제가 있다. 소설 전체를 아우르는 죽음 이전에 안락사를 원할 때, 그 결정에 찬성할 수 있을지 ,반대할지 나 스스로 결정지을수 없는 부분이다. 윤리적인 문제 로 생며을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윤리적인 문제보다 나의 결정과 권리를 먼저 생각할 것인가에 대한 인식과 자각이 먼저 되어야 한다. 이 소설이 우리에게 놓치지 않아야 항 것은 죽음에 대한 수많은 시선들과 관찰이다. 현재 안락사를 결코 허용하지 않는 대한민국, 그래서 주인공처럼 죽음, 안락사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안락사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어떻게 바꿔 나가야 하는지, 삶의 질을 높여나가는 걸 강조하면서, 장작 웰다잉의 기본 조건인 안락사조차 허용하지 않는 우리의 법과 제도들, 그 한계로 인해 스스로 자살을 선택하는 수많은 주변 이웃들을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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