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날다 - 우리가 몰랐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참혹한 실상
은미희 지음 / 집사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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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코, 춘자. 봄의 여인이란 뜻의 이름 하루코.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찬 세상, 봄, 따뜻하고 생동감 넘치고 아름답고 환희에 넘처나는 봄, 그 봄의 세상은 하루코라는 이름으로 나에게는 어둠이 되었고,지옥이 되었다. (-12-)


처녀 공출, 도대체 처녀들을 데리고 가 무얼 할까? 어느 집 애보개로 삼을까, 아니면 전쟁 중에 부상당한 군인들을 치료하는 간호부로 삼을까. 생각은 생각을 물고 이어졌다. 그 미로 같은 생각 끝에 잡이 있었다. 건강하디 건강한 육신은 잠마저도 질겼다. 죽음과도 같은 잠이었다. 그렇게 죽음은 늘 가까이 다른 형태로 순분의 곁을 맴돌고 있었다. (-37-)


무슨 영광으로 알란 말인가. 순분은 알 수 없었다. 순분은 한 번도 자신의 나라가 일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의 나라는 한국이었고, 자신의 고향은 한국의 어느 작은 마을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해야 할 닐은 조신하게 있다가 시집가서 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었다. (-104-)


그가 나가자 다른 군인이 들어왔다. 한 놈이 나가면 다른 놈이 들어왔다. 다시 그 놈이 나가면 또 다른 놈이 들어왔다.인사도 없이 걱정도 없이 그들은 더비를 대하듯, 짐승을 대하듯, 그렇게 들어와서는 흘레붙듯 황급히 일을 치루고 뒷사람에게 떠밀려 돌아갔다. 짐승들이나 하는 ,그 순결하디 순결한 소도 같은 열다섯 살 순분은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그들에게 해체되고 난도질되었다. (_162-)


그녀의 주검이 방에서 끌려나오고 있었다. 눈은 툭 튀어 나오고 보랏빛으로 변한 그녀의 퉁퉁 부은 얼굴은 살아 있을 때 보았던 그 얼굴이 아니었다.그녀의 주검은 팔이 잡힌 채 질질 끌려 방을 나서고 계단을 내려갔다. 그녀의 주검을 끌고 내려가던 병사는 그일이 짜증스럽다는 듯 주검을 향해 이빨 사이로 침을 내쏘고 욕설을 뱉고, 발부리로 걷어찼다. 최소한의 예의와 애도도 받지 못하는 그녀의 주검과 광경에 순분은 울깍, 욕지기가 일었다. (-233-)


"명령에 불복종하는 자에게는 죽음뿐이다. 하지만 죽이기에 앞서 명령에 복종하는 법을 가르쳐주겠다."
칼등이 순분의 등짝을 찍었다. 순분은 그 칼등의 힘에 눌려 바닥으로 엎어졌다. 척추가 끊어질 듯 바스라질 듯 그악스런 통증이 일었고, 그 통증에 숨이 끊어질 듯했다. 비명을 지른 건 순분이 아니라 이르 지켜본 아이들이었다. (-297-)


소설 <나비, 날다>는 일본인의 달콤한 말에 속아 위안부 소녀가 되었던 순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대한민국의 우울하고, 깊은 슬픔의 흔적, 하나의 생명에 대해 죽음과 삶의 저울추를 놓고 저울질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스스로 주어진 삶을 견디지 못하고, 저항하면 죽음이요, 순응하면 발길질이 있다. 군인들의 몸이 되었고, 자시의 영혼은 군인을 위해 쓰여져야 했다. 발길에 차이거나,죽거나 둘 중 한 가지 선택해야 한다. 살아가되,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으며, 죽어가되 ,살아갈 의미를 잃어버리고, 허망함 속에 삶을 채워 나가고 있었다. 그 시대의 효녀, 효자에 대한 유교적 가치와 인식은 순진한 순분을 일본인의 노리개가 되었고, 함께 하였던 이들의 죽음을 직접 보게 된다. 눈앞에서 같이 소통하고, 서로 위로하였던 이가 그들의 손에 의해, 보랏빛 퉁퉁 부은 얼굴로 주검이 되어야 한다. 그 잔인한 모습, 외면하고 싶었던 ,그 처절한 순간에 나만은 결코 외면해서는 안되겠다는 굳은 의지가 소설 속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그 시대의 짐이 되었던 조선의 소녀들, 스스로 집안의 짐이 되는 것보다, 돈을 벌어오겠다는 달콤한 꾀임에 바져서, 자신의 인생 모두를 바치게 된다. 그 누구도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죄괴감과 절망이 있다.순응하면서 살아가고, 명령에 복종할 것을 요구했던 그들이 한 생명의 삶과 죽음을 개미처럼 취급할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주는 역사 소설은 우리의 슬픔이요,우리의 아픔이면서,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되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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