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서 크리스티 읽기 - 역사가가 찾은 16가지 단서
설혜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애거서는 그 작품에 나오는 셰퍼드 의사의 누나 캐롤라인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큰 즐거움을 느꼈다고 한다. 호기심에 가득 차 주변의 모든 것을 듣고, 모든 것을 알려 하는 성미 까다로운 독신녀 캐릭터 말이다. 그런데 마블은 캐롤라인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중상류층의 하단부에 속하는 노처녀 캐릭터로 설정되었다. 캐롤라인보다 온화하지만 아주 노회하고 점잖으면서도 깐깐한 '빅토리아 시대'의 정서를 고수하는 인물이다. (-28-)


애거서가 쓴 66권의 장편 소설 가운데 살인, 살인미수, 자살과 직접 연관되어 독약이 등장하는 작품은 무려 41권에 달한다. 약물 조제법 90종이 나타나는데 ,비소, 아스피린, 키니네, 요오드, 인슐린, 모르핀에서부터 사이안화칼륨, 탄산수소나트륨, 비타민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무척 넓다. 소설에서 다루는 약학적 지식 또한 절대 얕지 않다. 한 예로 <벙어리 목격자>를 살펴보자. 아룬델 양이 죽기 전날 사람들은 그녀의 머리 주위에 후광이 반짝이고 입에서도 빛나는 리본이 흘러나오는 것을 목격했다. 푸아로는 '인의 독성에 관한 논문'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아룬델 양이 독살되었음을 밝혀낸다. 애거서가 푸아로의 입을 빌려 자신의 전문성을 은근히 드러내는 대목이다. (-56-)


롤리와 린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생겼다. 롤리는 쓰디쓴 어조로 "너처럼 전쟁에 나갔던 여자들은 가정에 정착하기 힘들다는 걸 알게 될거야"라고 말한다. 복무 해제 후 자유로운 여자로 돌아오는 일은 신나는 일이었어야 했다. 그런데 린은 판에 박힌 생활이 지루하다는 느낌과 앞으로는 친구들과 마치 동물처럼 몰려다닐 일만 남았다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71-)


1940년 1월 1일 다시 본격적인 배급제가 시작되었다. 식료품에 적용된 배급제는 소고기, 버터 , 베이컨, 홍차, 마가린에서 점차 잼, 설탕 시럽과 사탕, 오렌지 같은 과일에까지 확대되었다. 오렌지는 비타민 섭취가 매우 중요했던 어린이들에게만 판매되었다. 이듬해부터는 의복에도 배급제가 적용되었다. (-137-)


영국인들은 심지어 반려견에게서도 계급적 지표를 찾는다. 상류층은 레브라도, 킹 찰스 스패니얼, 골든 리트리버를 선호하고, 하류층은 로트바일러, 알세이션, 푸들,치와와 등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인간들이 만들어낸 계급제도와는 아무 상관없는 치와와나 푸들은 졸지에 하층민의 개로 낙인찍혀버렸다. 영국은 세계 역사상 의회민주주의를 가장 먼저 이뤄낸 나라다. 그런 나라에서 오늘날에도 반려견에게조차 계급성을 부여하는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200-)


지금 하면 , 다양한 추리 소설작가들이 있지만, 100년전엔 애거서 크리스티가 있었다. 추리의 여왕이면서, 독약의 여왕(Queen of Poison) 이라 불릴 수 있었던 근간에는 그녀가 쓴 작품 곳곳에 독, 독약을 쓴 흔적들이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이 소설은 지금은 절판된 빨간 책, 해문 출판사에서 나온 80권의 애거서 크리스티에 대한 깊은 향수가 약사학자 설혜심의 생각을 자극하게 했다. 추리소설과 소설가에 대해서, 시대적 상황과 역사성을 인문학적으로 고찰해 나가는 독특한 구조를 띄고 있으며, 이 소설이 함축하고 있는 메시지는 아주 분명하다. 


아서 코난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에 맞설 수 있었던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은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영군인의 기질, 전쟁이 일어났던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에 투입되었던 영국인들이 전쟁이나 군수 물자 생산에 투입되고 난 이후의 삶이 , 이 소설이 긴밀하게 짜맞춰져 있었다. 즉 추리 소설에 대해서, 역사학자가 생각하는 문학적 가치에 첨가되는 역사성은 문학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었고, 영국의 산업 구조 전반을 훑고 지나간다. 즉 , 소설가나 평론가가 바라본 관점과 다른 ,역사학자의 정통적인 분석기법을 활용할 수 있었고, 추리 소설이 가지고 있는 메시지, 제국주의 국가 영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섬나라 특유의 문화와 생활상까지, 하나하나 이해를 도모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