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까짓, 민트초코 - 편식이 아니라 취향입니다만 ㅣ 이까짓 4
김경빈 지음 / 봄름 / 2021년 8월
평점 :
물론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종종 편식이 민폐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다들 초밥이 좋다는데 나 때문에 사이드 메뉴에 뭐가 있는지 알아보는 상황을 상상해 보라. 내가 괜찮다고 해도 다들 안 괜찮아 보이는 표정들, 그 민만하고 죄송스러운 분위기. 그런 이유로 공적인 관계의 사람들에겐 웬만하면 편식을 고백하지 않는다. (-26-)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릴 적에 내 편식을 고쳐보려 그토록 많은 잔소리와 겁박과 회유를 시도했던 부모님조자, 곤약만큼은 딱히 먹이려 들지 않으셨다. 이거 먹어봐, 했을 때 싫어요, 라고 대답해도 혼나지 않는 유일한 음식이었다. 왜 안 먹냐, 라고 물었을 때 물컹거리는 게 싫었어요, 라고 대답하면 부모님은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그저 고개를 끄덕이셨다. (-68-)
포대장의 지시로 병사와 간부가 함께하는 체육대회를 열 때는 풋살, 농구, 배구, 줄넘기 등등의 모든 종복을 체육관에서 해결했다. 산 밑에서 공수해 온갓가지 피자와 수육과 과일, 그리고 스티로폼 박스 안에 고이 모셔온 홍어회까지. (-107-)
어제도 조카들과 놀이터에서 뛰어놀았다. 이제는 훌쩍 커버린 여섯 살, 네살 조카들을 바라보며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사는 동안 마주칠 수많은 모호함과 불확실함 앞에서 나는 얼마만큼 단호할 수 있을까, 얼마만큼 분명할 수 있을따. (-122-)
다정하고 쾌적한 흰색 소나타는 얼리 사라졌다. 다행히 비는 거의 그쳐 우산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차에서 내린 자리에 그대로 서서 손에 든 홍시를 베어 물었는데, 눈이 번쩍 뜨였다. 이럴 수가 있나? 홍시가 이렇게 맛있을 수 있는건가? 충격과 감탄과 의심과 행복이 교차했다. (-148-)
눈을 감아도 두려움과 자책감은 사라지지 않고, 눈을 감아도 그리움은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감으려다 살짝 뜬 실눈 사이로 들이치는 후회가 더 날카로울 수도 있다.외면하려다 마주친 장면이 더 가슴 시릴 수도 있다.조개를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아이는 결국 홍합을 먹는 어른이 됐다. (-158-)
익숙함과 익숙하지 않음, 친숙함과 친숙하지 않음, 우리가 무난하다 말하였던 것 중에, 식습관의 차별이 있다. 어떤 장소에서, 어떤 시간에 , 어떤 타이밍에 따라 특정 식습관이 불쑥 튀어올를 때, 당사자는 눈총받기 쉽다. 장례식에 올라오는 음식들이 나에게 맞지 않을 때,그 순간 주변의 난처한 눈빛과 마주하게 된다. 그 순간 다수결에 따라 맞춰가는 걸 원칙으로 삼는다. 나의 개인의 취향보다 ,대다수의 선택을 먼저 선택하게 된다.어떤 걸 먹자니,내가 못 견디고, 안먹자니 분위기에 휩쓸리는 것, 그것이 한국의 식문화이며, 편식이라 말한다.
편식하며 살아가면, 잔소릴 듣기 쉽다. 대부분 다 먹는 음식들이 나만 안 먹고 싶을 때, 주었던 밥그릇 마저 빼앗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저자의 입장을 바라본다면, 이해와 공감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쉽다. 어릴 적 절대 조개를 먹지 않겠다 하는 다짐을 하였던 저자는 어른이 되어, 홍합을 먹게 된다. 이 순간이 누구에겐 지극히 당연하다 말할 수 있지만, 좀 더 냉철하게 바라보면 당연하지 않다. 즉 내가 못하는 것, 내가 싫어하는 것, 잘하지 못하는 것을 권할 권리는 그 누구도 없다.개인의 취향은 존중하면서, 개인의 편식은 존중하지 못하는 현실, 그걸 극복한다는 것이 어떤 건지 알 수 있다. 민트 초코를 거부하고, 바나나를 거부하고, 조개를 거부했던 저자가, 사회의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전라도 특유의 특산물 홍어가 받지 않는 것처럼, 경북의 풍기 인삼이 체질에 안 맞아서, 안 받는 경우도 있다.그 편식의 특징에 대해, 죄의식을 주려 하지 말고, 개인의 개성, 취향으로 바라본다면, 서로 어울려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