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시 강에서 만난다 1 - 나의 친구 두우쟁이에게
이상복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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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에 대한 열등감에 빠져 외톨이가 되었을 때 명훈이가 다가왔다. 그때 명훈이가 내게 뜨거운 사랑을 주었기 때문에 나는 방황을 멈출 수 있었다. 벼농사 절기인 곡우 때 빗물과 함께 나타난다는 물고기 '두우쟁이'처럼 명훈이는 주위 환경의 유혹에 빠져 걷잡을 수 없이 침몰해 가던 나를 구출한 것이다. (-9-)


지난 겨울 누이동생들이 죽은 후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많이 다퉜다. 어머니는 누이동생들의 죽음을 아버지 탓으로 돌렸다. 툭하면 " 당신이 돈을 벌어오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죽은 거예요." 라며 볼멘소리를 해댔다. 어머니가 쏘아붙이면 아버지는 한숨을 푹푹 쉬면서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오곤 했다. (-40-)


어머니는 부지런한 살림꾼이었으나 빈틈도 많았다. 가끔 자기가 둔 물건의 행방도 몰라 아버지에게 핀장을 들어가며 장롱 서랍을 들쑤시기 일쑤였다. 서랍 속은 늘 뒤범벅이 되어 있어 어떤 물건이고 어머니 아니면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어머니의 이러한 성격을 이용했다. (-110-)


유혹에 무너져서는 안 된다고 거듭 결심을 하면서 그럭 저럭 며칠이 지나갔다. 그런데 자꾸만 초코우유가 내 결심을 흔들었다.내가 미리 염두에 두고 있던 집 앞을 지날 때였다. 하필이면 그때 초코우유가 눈에 확 빨려 들어왔다. 나는 멈춰 서서 대문 밑으로 보이는 우유를 흘깃 쳐다보며 어찌할까 잠시 망설였다. (-146-)


내가 신문을 돌리는 구역에는 정말 대궐같이 큰 집이 있었다. 그 집 정원은 대단히 넓었다. 나는 이렇게 큰 집을 처음 봤다. 크기로 치면 주용이네 집보다도 컸다. 대문은 항상 열려 있었다. 대문 한가운데로는 찻길이 나 있었고 ,양옆으로는 과일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대문에서 현관까지 가려면 좀 걸어야 했다.나는 걸으면서 옆에 열려 있는 사과를 따 먹기도 했다. 아무도 보는 사람도 없어서 마음 편하게 따먹었다. 꿀맛이었다.
여느때처럼 방과 후 보급소에 들러 5가방을 던져 놓고 신 총무와 함께 신문대금을 받으러 나간 날이었다.여러 집들을 거쳐 그 대궐 같은 집에 이르렀다. (-187-)


얼굴이 뽀얗고 뚱뚱한 보급소장은 배달 소년들을 모아놓고 일장 훈시를 했다. 확장을 못하는 배달 소년들은 더 이상 신문 배달을 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 엄포까지 놓았다. 한마디로 자기 뜻을 잘 맏들어 확장에 힘쓰라는 얘기였다. 모든 것은 배달 소년들의 수완에 달린 문제라는 것도 빼놓지 않고 강조했다. (-245-)


소설 <우리는 다시 강에서 만난다 1>은 작가의 자전적 소설로서, 두우쟁이이자 절친한 친구 명훈과 형준에 대한 어릴 적 에피소드가 기록되어 있다. 1970년대 주인공의 10대 어린 시절의 기억은 신문을 배달하는 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매달 신문 보급소에 들러서, 할당랴을 배달하는 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 가잔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그 시절이 오롯이 기록되어 있다. 가난해서 , 남들이 가진 것을 얻지 못했던 과거의 기억, 어린 시절 누이의 죽음이 오로지 아버지의 무능함에서 시작되었다는 어머니의 타박을 들으면서 성장하게 된다. 10대 신문을 팔몀서 주인공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이 속담을 철썩같이 믿고 성장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신문 소년으로서, 대문 앞에 있는 초코우유를 먹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게 되었고, 신문 구독자를 늘리는 신문 확장을 위한 다양한 묘책을 만들고 있었다.지금처럼 한글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그 시절, 신문을 배달하기 위해서는 문패에 적혀 있는 한자를 아는 것은 기본 소양이었다. 그 과정에서 신문보급소 내에서 진행된 신문 확장 이벤트, 신문 확장 1등은 하였지만, 보급소 소장의 억지에 밀려서 상을 타지 못한 분함도 있다. 즉 1970년대, 어리고 처절하게 가난했던 그 시절의 소회, 절친이었던 친구들의 죽음과 그 과정에서 혼자 남아 있다는 것에 대한 쓸쓸함과 친구에 대한 그리움, 대궐같은 마당이 있는 국회의원의 집을 보면서, 돈이 가지는 힘와 권력의 힘을 느끼게 된다. 산다는 것에 대한 고민,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가치, 더 나아가 왜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 생각하게 되는 과정에서, 스스로 가난에서 벗어나 스스로 일어서는 삶을 기록해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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