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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시 강에서 만난다 1 - 나의 친구 두우쟁이에게
이상복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1년 7월
평점 :

그러다 보니 앉으나 서나 우동,자나 깨나 우동, 들어가나 나가나 우동이었다. 밥상도 따로 받았다. 아버지와 우동이만 밥사에서 밥을 먹고, 어머니와 여동생들은 방바닥에 밥과 반찬을 따로 놓고서 먹었다. 우동이 아버지의 남아선호 사상은 하나임과 부처님도 놀라 자빠질 정도였다. (-75-)
바로 그 옆자리에는 젊은 남자와 여자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차를 나르던 누나가 찻잔을 빈 탁자 위에 내려놓고는 무쇠 난로의 커다란 뚜껑을 열고 이글대는 조개탄 가운데를 쇠꽃패이로 두어 번 콕콕 찌르고 나서 난로의 아래쪽 구멍을 덜커덕 소리가 나게 닫고 갔다. (-237-)
다시 유치원으로 향해 차를 모는 내 머릿솓에 명훈과 함께했던 많은 시간들과 그 많은 것들이 차창 밖의 풍경처럼 스치며 지나갔다. 그가 죽었다는 것이 도저히 믿겨지지 않았다.어디선가 갑자기 웃으면서 나타날 것 같다는 생ㄱ가이 자꾸 들었다. 어렵게 딸아이를 떨어뜨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95-)
대성리 계곡에는 사람들이 벼로 없었다. 둥글 넓적한 돌을 집어 흐르는 물 위를 향해 냅다 던졌다. 물을 향해 돌을 던지면 돌이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튀기다가 물 속으로 푹 가라앉았다. 한 번만 튀면 재수가 옴 붙은 것이고 , 세번이나 네 번 튀면 운이 좋은 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물수제비가 동동동 떠지는 걸 보니 운이 좋은 날인 가 보다. (-215-)
1990년대 드라마 아들과 딸, 젊은이의 양지가 있었다.이 두 드라마는 1970년대 우리 사회의 일상적인 모습을 리얼하게 그려나가고 있었다.지금의 정서와 너무 다른 그 시대의 정서가 있었으며, 남아선호사상의 끝판왕을 느끼게 된다. 남아 선호 사상은 밥상머리에서 차이가 나고 있었고, 여자들은 공부해서 , 쓸데가 없다는 게 그 시대의 보편적인 생각이었다. 지금이라면 결코 느낄 수 없는 그 시대에 허용되었던 다양한 에피소드,그 에피소드가 이 소설 속에 고스란히 내재되어 있으며, 386 세대의 느낌과 감성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었다.지금은 거의 보이지 않는 남학생이 여학생을 괴롭히는 아이스께끼, 그리고 신문팔이, 다방구와 같은 것은 지금 아이들에게는 전혀 공감이 가지 않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즉 가난 했던 그 시절, 우리가 보고 듣고 느꼈던 일상을 본다면, 그때 나의 또다른 모습이 주마등처럼 생각나게 된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것, 그것이 냐 삶의 일부분이라는 걸, 소설 속 주인공의 모습속에 고스란히 비추고 있었다. 20세기 우리의 모습과 21세기 우리의 모습이 미묘하게 다르다는 걸 느끼게 된다. 삶과 죽음의 흐름,그것을 강을 매개체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