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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병에는 향수가 없다
성지혜 지음 / 문이당 / 2021년 7월
평점 :
카메라는 점점 가까이 나의 코앞에 이르렀다. 나의 입김이 피사체에 서리고 사진기자의 눈동자에 내가 비친 순간, 다음 질문이 뒤를 이었다.
"청마 선생님은 시인, 정운 선생님은 시조시인, 이원수 선생님은 동화작가가 되라고 하셨는데, 선생님이야마로 문운을 타고 나신 분이군요."(-33-)
조영수 원로 목사님에 의하면, 자네가 단 씨인 건 태초에 하나님께서 예정해 놓으신 고귀한 성 씨라는 겁니다. 그분은 덕산에 사원을 세워 제자들을 양성한 남명 조식의 후손인데, 나를 그리 추켜세웠어요. 일테면 성경에 나온 야곱의 후손 단 지파들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 이스라엘에서 떠나 별을 따라 웅지 튼 곳이 삼첞리 금수강산이며, 단 씨들은 그 후손이란 겁니다. 이스라엘에 단지파가 사라진 것도 그런 연유였답니다. (-97-)
곧이어 리라가 단안을 내렸다
"암튼 난 한강의 젓줄이 그리워서라도 한국으로 돌아올 거야."
노박은 딸을 가슴에 품었다. 그래, 미오새, 미운오리새끼는 어미 품속으로 파고드는 법이거든. 더불어 미우새,미운오리새끼도 어미 품속으로 파고들 수밖에. (-161-)
-누나 볼에 뽀뽀해도 돼?
그가 응석 부리면 난는 퇴짜 놓았다.
-안돼, 내 입술엔 칼날이 박혔어. 앤드류읭 입술이 닿자마자 혀가 토막 날까 겁나지 뭐야.
-난 마법사거든. 그 토막난 혀에 날개를 달아 하늘 높이 띄우지 뭐. (-171-)
어느 사이 다솔은 불혹이 되었습니다. 산사람이 되고부터 다솔이 견딜 수 없는 건 성욕이었습니다. 약초를 캐서 보신하고 건가을 되찾자, 그의 중심부는 불끈거렸습니다. 수음을 해도 걷잡을 수 없이 여자가 그리웠습니다. 꿈에도 여자랑 동침하는 장면이 떠올라 그를 괴롭혔습니다. 외지를 돌며 발길 닿는 곳마다 여자랑 동침했던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198-)
청하 목소리가 더욱 유쾌하게 들린다.
인간은 행복을 100% 누리기를 원하지만 ,인간이 완전할 순 없잖습니까. 다만 자신을 비워 1% 나눈 삶을 기꺼이 포용한다면 99% 행복이 다가오는 법이죠 (-259-)
만물은 결을 지녔습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그만한 결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만의 무늬가 아로새겨져 격을 이루지요. 우리는 만물의 영자인 인간입니다. 세상의 모든 결을 다스릴 능력을 지녔지요. 우리는 인간답게 사는 게 생의 목표 아니겠습니까. 가장 인간다운 삶이란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는 남녀가 동심 일체에서 일군 화평한 가정을 뜻합니다. 그게 바로 인간이 누려야 할 복락이고 생의 가르침입니다. (-275-)
소설가 성지혜 작가는 자신만의 색깔이 문학 속에 녹여 있다. 자신의 꿈과 격과 결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고 있으며,그걸 이 소설 속에 고스란히 녹여내고 있었다. 소설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가치, 허구적 스토리에 문학이 내포하는 다양한 언어적 문체가 녹아내리고 있으며, 작가의 인생에서,나의 인생을 관찰하고, 성찰하게 되었다.
소설은 여덟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은 서로 분리된 문학이며, 세월의 흔적, 보고 듣고 느꼈던 모든 것이 온전히 소설에 담겨지게 된다. 2008년 세상을 떠난 소설가 박경리의 <토지>에 대한 작가 나름대로의 소회, 그리고 고인이 된 박경리의 삶과 문학적인 향수가 소설가 성지혜님에게 문학의 씨앗을 뿌려 놓게 된다. 누군가가 누구를 존젼하고, 삶의 지향점이 된다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 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그것이 작가가 의도한 목적 의식이며, 문학을 밥으로 삼고 견뎌온 삶이다. 나에 대한 이해를 넘어서서, 타자에 대한 관찰, 자신의 묙망을 통제의 바구니에 담을 수 있다면, 나만의 격과 결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에 , 이 소설이 내포하는 문학적 가치와 해설을 덧붙여 보게 되었다. 즉 내 앞에 놓여진 삶과 경험이 우연이든,필연이든 나에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있고, 억울한 상황이 놓여지더라도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온전히 내 몫으로 남게 된다.
소설에는 작가의 상상력도 있다. 소설 <그대와 나, 어디서 별이 되어 만나리>에는 단씨성을 지닌 기현이 주인공이다. 그는 자신이 단씨인 것으로 인해 항상 어디서든지 주목받을 수 밖에 없었다.노력하지 않아도, 애쓰지 않아도 주목받는 위치에 놓여지게 된다. 자신의 성은 사회의 합의된 요식행위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가지는 힘과 에너지는 무시할 수 없었다. 주목받고, 관심받는 것이 때로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이 소설을 읽는다면, 충분히 나만의 결을 만들어 낼 수 있고, 삶의 목표와 꿈으로 삼을 수 있다. 나의 나이테에는 나의 결과 격으로 채워지게 된다. 나에게 주어진 자부심이 인간적인 면을 돋보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는 소설이며,나를 되돌아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