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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여중 구세주 ㅣ 특서 청소년문학 21
양호문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7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1/0817/pimg_7300591133067101.jpg)
"그 애들이 뭐가 그리 좋았는지 ,매일 찰떡처럼 붙어 다녔었지. 그리고 '유라큐라','오이소박이','장아찌 할머니','차남구함','닌자너구리','조위석사','지옥여행','6,000원 아저씨','예술회관 남중생들' 다 생각나네, 아하하하!" (-15-)
잔잔한 바람에 정원수 벚꽃이 떨어져 휘날렸다. 공중에 어지러이 떠도는 벚꽃잎들, 마치 큼직한 눈소이 같았다. 세주와 나는 그 벚꽃잎을 잡으려고 두 팔을 허공에 내저으면서 앨르 쓰는 서로의 모습을 보고 키들키들 웃었다. 세주의 쌍둥이 남동생이 자기 방 창문을 통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도 모른 채. (-76-)
세주가 한참 뜸을 들이다가 대답을 툭 내뱉었다.
"닭이 무서워!"
"뭐야? 닭?"
"응@! 난 암탉이 제일 무서워!"
"암탉? 세주 너, 지금 나 놀리는 거지?"
기가 막혀서 나는 배꼽이 빠져라 웃었다. 아니 세상에! 닭을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다니, 쥐나 뱀이라면 몰라도. (-123-)
세주가 논농사에 대해 아는 체를 했다. 열 살 때까지 외갓집에서 자랐다더니 농사짓는 걸 본 모양이었다.
"힘들지! 하여간 남편이 여덟마지기 그 논을 사놓구서 을매나 좋아했는지 몰라.매일 아들을 데리구 나가서 일하는 모습을 보여줬었어." (-177-)
천천히 움직이며 내부를 꼼꼼히 둘러본 우리는 차례로 방명록을 작성한다.
늦게 찾아와서 죄송해요,할머니! _차인정
할머니 많이많이 보고 싶어요!_함은하
오래오래 잊지 않을께요. 사랑해요!_구세주
할머니, 천국에서는 힘든 일 하지 마시고 편히 지내세요. 또 올게요_남혜진(-251-)
양호문 작가의 중학생 시리즈는 < 공부 패밀리>,<남ㅅ겅여중 구세주>, <중3 조은비> 로 이어지고 있다. 감수성 깊은 나이, 예민하고, 어른의 간섭에 대해 반항할 때가 바로 중학생 그 나이였다. 어른들의 눈높이로 볼 때, 할 줄 아는 것도 없지만, 모든 걸 다 하고 싶은 꿈에 부풀어 있었던 그 때에는 어른에 대한 개념조차 모르던 시기였으며, 학장 시절의 소소한 일상들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이어지게 된다. 소설은 그 부분을 짚어내고 있다. 중학교 2학년, 중1 신입생도 아니고, 중3 졸업생도 아닌 , 딱 끼인 나이 , 소설 속 주인공 차인정, 함은하, 구세주, 남혜진은 공통의 추억과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여기에 구세주의 쌍둥이 남동생 구세우가 있으며, 네 소녀의 깔깔거리는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 보는 또다른 주인공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남성여중 2학년 4반에 다니고 있으며, 어떤 일을 하던 하나로 똘똘 뭉치게 된다. 좋은 일을 해도 뭉치고, 소소한 일탈도 마찬가지다. 학교 선도부 를 피해,개구멍에 들어가 모래 수억을 들었던 그 추억들이 이 소설에 적혀 있다. 그리고 그 네 소녀들에게는 유리큐라, 오이소박이, 장아지 할머니,차남구함, 닌자 너구리,조위석사, 지옥여행, 6,000원 아저씨, 예술회관 남중생,이런 키워드들에 대한 의미를 고유한다. 그건 은어이면서, 별명처럼 불리었던 친근함과 익숙함이 있는 단어였으며, 학창시절 조용히 퍼져나갔던 누군가에 대한 기억이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차남구함이라는 교내 걸그룹을 만들어 노래를 불렀고, 그 추억을 함께 나누고 있었다. 주어진 가정환경은 풍족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풍요로웠던 그 시절, 할머니 밑에서 성장했던 구세주, 구세우 쌍둥이 남매의 모습들을 본다면, 지금 우리가 보고 느꼈던 그 십대의 3년간의 짧은 순간들이 내 삶의 전부였음을 알게 해주고 있으며, 15살 네 소녀들은 어느덧 25세가 되어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돌이켜 보면 나의 삶도 소설 속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08년 광우병 파동이 일어났던 그 시절 , 소설 속에서는 남성 여중에 다녔던 친구 차인정,함은아,구세주,남혜진은 나름대로 의리가 있었고, 우정을 쌓아가게 된다. 길을 가다가 어려운 사람이 보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그 시절의 정겨움,그것이 지금은 그 정겨운 일상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살아가면서 ,순간 순간 스쳐지나가는 것들, 미숙하고, 때로는 유치하지만, 그 순간이 있었기 때문에 10년이 지난 뒤에도 스스로 견딜 수 있었다. 서로 헤어지고 마날 기회가 적어지는 상황 속에서 자신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 것에 대한 가치가 어디까지인지 깨닫게 해 주는 소설, 나의 학창 시절의 소소한 일상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게 된다.즉 소설 속 조위석사라 부르던 선생님이 나에게도 있었고, 학교 선생님을 은어나 별명으로 불렀지만, 그에 대한 죄책감은 없었다. 주어진 그 순간을 느끼고, 두려움 조차 흘려 보낼 수 있었던 그 시절이 갑자기 그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