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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컷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87
박하령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7월
평점 :



"임헌석, 너 왜 친구를 팼어?"
난 입을 꽉 다물고 허공만 바랒봤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으니까. 싹퉁머리 없는 뒤통수에 대고 해야 하는 말은 정해져 닜다. 뒤통수가 듣고 싶은 말, 즉 복잡 미묘하게 얽힌 마음 따위는 완벽하게 불순물이 되어 걸러진 채 뒤통수의 주인공이 원하는 팩트 위주의 말만 골라서 해야 한다. 육하원칙에 입각하여 아주 건조하게 말해야 하는데, 그건 진실과는 멀어질 게 뻔해서 말하고 싶지 않았다. 샘은 대답 없는 나를 힐끗 보더니 본격적으로 빈정대기 시작했다. 입을 앙다문 내 모습이 눈에 거슬렸을 게다. (-10-)
우리 학교의 전설인 쌍두이 누나들이 나를 '블랙 십'이라 부르느지 정말 몰랐다. 엄마까지 더불어 셋이서 입을 모아 나를 그렇게 부르는 걸 알았을 때 처음엔 그냥 재미로 붙인 별명인 줄 알았다. 블랙 십, 해석하면 일명 '까만 양'인데 까맣다고 해도 양은 양이니까, 관용적 표현인 '어린 양'의 양이겠거니 했다.다만 '내가 남자라 까만 양이라고 부르나?' 이렇게 혼자 해석했다. (-19-)
"야, 숏컷! 네가 뭔데!"
"숏컷, 너 페미 첩자냐?"
등 뒤에서 여러 목소리가 들렸지만 돌아보지 않고 교실로 서둘러 직진했ㄷ아. (-60-)
"발다연이랑 놀지 말라고!"
발다연이 손다연을 말하는 거냐고 굳이 되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남자애들이 흔히들 하는 유치찬란한 네이밍이니까.초딩 때나 할 법한 말을 아직까지 하고 있다니 웃겼다.
"발다연이 뭐야. 손다연이지. 어차피 다연이랑 친한 ㄱ런 아니지만 왜 놀지 말라고까지 하는 거야?"
"넌 내 여친이니까."
내 여친이라는 말을 하면서 이수는 내 손을 잡았다. 여친이라고 발음할 때 오른쪽 보조개가 파이는 건 처음 알았다. (-61-)
전작 <발버둥치다>에 이어서 <숏컷>이다. 박하령 소설 <숏컷>은 마치 지금 나와야 하는 책인것 마냥 자연스럽게 우리 앞에 나타난 청소년 단편 소설이다.여기서 타이밍이란, 어떤 일이 터질 것을 예상한 것마냥 책이 출간되었다는 의미다. 이 소설은 <숏컷>이외에 <폭력의 공식>, <달콤 알싸한 거짓말>, <너와 짝이 될 수 없는 이유>,<낯선 다른 맛>, <터널 통과하는 법>,이렇게 여섯편이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청소년의 일상과 엮여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두번 째 이야기 <숏컷>에 눈에 들어왔던 이유를 손꼽자면 , 도코 올림픽 양궁 3관왕 안산 선수가 ,숏컷 논란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숏컷을 페미니즘과 연결시키는 모순이 있다. 과거에도 짧은 머리가 있었고, 지금도 짧은 머리가 있다.유난히 여성에게 숏컷에 재한 혐오와 차별이 있고, 그것이 별명을 넘어서서 , 한 사람을 인신공격하는 이상한 문화가 있으며, 이 소설은 바로 그런 우리 사회의 모순이 어디서 시작하며, 왜 그런 상황이 나타나는지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숏컷 여성들에게 중성적인 이미지를 덧 씌우고 있으며, 여성스러움에 대한 강요는 인신공격 뿐만 아니라 혐오와 차별의 상징적인 의미가 되고 있다. 학교 내에서, 청소년 사이에서 쓰여지는 별명, 네이밍을 넘어서서, 왜곡된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된다.즉 학창 시절 아이들끼리 흔히 쓰는 별명,네이밍은 그 아이를 기억하는 이유가 된다.그러나 그 선을 넘어서면,자신의 별명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 소설 속에 손다연에게 숏컷이라는 별명이 불편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