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쭈물하다 이럴 줄 알았지 문예단행본 도마뱀 4
허희 외 지음 / 도마뱀출판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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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여러분께 '어떤 일을 앞두고 우물쭈물했던 경험','망설임의 순간','기회를 놓치고 후회했던 일'등에 대해 자유롭게 서 다라고 요청했다. 언제나 그렇듯 각자의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여러분이 각기 개성넘치는 것들을 보내주셨다. 죽음의 타이밍, 연애의 타이밍, 작업의 타이밍, 인생의 타이밍 등 우리가 살면서 맞딱뜨리는 온갖 선택에 관한 이야기가 다채롭다. (-7-)


예컨데 해외여행을 갔는데 하필 그곳에 쓰나미가 발생했다. 그것은 우연에 속하므로 사고에 해당한다. 사고는 타이밍이 나빳다고 한탄할 수 있다. 반면 노동자가 업무를 하다 죽음에 이른 것은 우연에 속하지 않는 사건이다. 그러므로 타이밍 운운해서는 안 된다. 타이밍이 나빠 출발하던 열차에 치여 숨진 것이 아니고, 타이밍이 나빠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것이 아니다. 이는 소위 '경영 효율화'라는 명목하에 원청업체가 하청 업체에게, 정규직이 비정규직에게 안전을 포기하고 위험을 떠맡도록 강제하여 발생한 사건이다. (-19-)


어제는 교통사고가 날 뻔 했다.빠르게 달려오던 차가 눈앞에서 멈췄다. 놀라서 일그러진 얼굴을 한 운전자와 눈이 마주쳤다. 일초만 늦었어도 크게 다치거나 죽었을 것이다. 
내게 돌진하는 차를 보는 그 짧은 시간 동안 강하게 농축된 삶에 대한 열망이 내 안에서 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친한 친구들의 농담에 한참 동안 웃으며 살아 있어서 좋다는 말을 나누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죽음은 삶만큼이나 너무나 도처에 있다. 나는 그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23-)


그러나 우리의 실제 삶에는 가끔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근거도, 맥락도 없이, 전조도, 복선도 없이, 난데없이 등장하는 사건이,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건 소설로도 못 쓸 일이야, 너무 소설 같아서 소설로는 쓰지 못 할 일이야, 하고. (-36-)


그런 적이 있다."너는 누구에게도 창피하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살아본 적이 있어?"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열과 성의를 다했을 그때, 내게 방구석 작곡가라는 타이틀을 떼어낼 줄, 유명한 가수의 곡을 써달라는 일생일대의 제의가 들어왔고, 그렇게 내민 나의 첫 작품에 감사하게도 회사는 관심을 가져주셨다. 내 인생에서 평생 잊을 수 없는 중요한 사건 중 하나다. (-83-)


내가 기억하는 그녀의 첫 마디는 단호한 거절이었다. 그녀의 맑은 눈은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생각해 볼게요."라는 많은 사람들의 애매한 대답에 지쳐 있던 나에게는 참신하게 다가왔다. 헛된 희망을 남겨놓는 것보다는 단호하게 쳐내주는 것이 깔끔하다. 미련이 없으니까. 아니면 단지 그녀의 외모에 끌려 용납이 됐던 것일까? (-165-)


이만큼 살았으면 스스로에게 놀랄 일이 더는 없을 만도 한데, 나는 종종 나를 놀라게 한다."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속담은 타인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할 수 있는 말이다. 사람이 이렇게 쉽게 또 많이 잘 수 있다니,어떤 의미로는 대단하다고 해야 할까.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방 안이 어둠에 물들어 있다. (-196-)


이 책의 주제는 타이밍이다. 타이밍 하면 기회가 떠오른다. 그리고 어떤 예기치 않은 사건 사고도 떠오르고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과 결정을 마주하고 있으며, 선택해야 하는 타이밍을 놓쳐서 후회한 적이 있다. 어떤 한정판을 구매하지 못해서 후회하고, 사야 하는데 사지 않아서 후회한 경험이 있다. 그런데 타이밍이 항상 기회와 연결되는 건 아니다. 소설 처럼 느껴지는 일, 어떤 자연재해와 타이밍이 연결될 때, 내 앞에 놓여진 타이밍에 따라서 생사가 오갈 때가 있다.그 순간 인간는 타이밍을 놓쳐서 다행이다, 타이밍에서 벗어나 스스로 구재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단적인 예로 삼품백화점 붕괴, 세월호 참사 가 여기에 해당된다. 1990년대 최악의 참사였던 삼품백화점 붕괴사고는 분초를 다투던 사건이었고, 잠깐 동안 죽음과 삶이 엇갈리게 된다.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다. 배 안에 갇혀 있었던 이들과 배 밖으로 나왔던 이들의 삷의 타이밍을 보면, 그 타이밍이 순발력을 요할 때와,우물 쭈물할 때가 때로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타이밍이라는 표현을 조심스럽게 써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언론이 쓰는 타이밍에 대해서, 대형 재난재해와 엮일 때는 각별히 유의해서 써야 할 부분이다. 때로는 타이밍과 어떤 사람의 우유부단함과 엮일 때도 있고, 때로는 말의 조심스러움이 요구될 대가 있다. 즉 책 속의 우물쭈물 거림에 대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조건들을 하나 하나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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