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남기는 사람
유희란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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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감사해.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그녀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따뜻한 햇볕을 받으면서도 감사하고 상쾌한 바람을 마시면서도 감사해. 자연은 정말 아름답지 않니?
그렇게 묻고는 뒷자리의 차창에 얼굴을 붙였다. 나의 대답을 기다리는 기색은 없었고 다만 아름다운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눈을 치켜뜨는 거로는 모자랐는지 고개를 옆으로 낮게 기울였다. 고마움에 겨운 자세였다. 곧 석양이 물들 시각이었으나 푸른 하늘은 아직 높고 눈이 부셨다. (-11-)


기능을 잃어버린 항문과 인공항문, 항문이 두 개인 이모는 병원에 올 때면 다른 날보다 오래오래 화장을 했다. 꼼꼼히 바른 색조에 피부색은 한없이 밝고 화사했으나 그래서 지워진 눈에는 뒤돌아서서 우는 듯이 보였다. 몇 번의 신음이 더 나고 나서야 커튼이 열렸다. 나이 지긋한 의사가 잠시 내게 눈길을 주었고 나는 머리를 숙여 고개를 돌렸다. 열린 커튼 사이로 옷을 추스리는 이모가 보였다. (-23-)


다른 욕망 같은 거야. 죽음이 너무 가까이 있으니까. (-44-)


내가 서 있는 장소에서 모든 것이 비롯된다. 
프레데릭 좀머의 말로 말문을 연 강사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나는 사진을 찍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을 가만 놔두고 무수한 빛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작업입니다. (-68-)


그의 하얀 머리카락이 성긴 뜨개실처럼 널려 있고 콧구멍 사이로 회색 털이 비죽이 나와 있다. 조금 전에 생긴 듯 얼굴에 낀 주름은 몹시도 생경했다. 색 바랜 이불은 그의 허리께로 내려와 있고 쇄골이 맞닿은 지점의 골은 흥분이라도 한 것처럼 불그스레하다. 늘어진 발열 내복의 두께감이 없어서인지 남편의 왜소한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탄탄하던 젖가슴도 복근도 이제 보이지 않는다. (-129-)


두께가 없는 그녀가 한번 웃을 때면 남자는 그녀에게 숨겨져 있던 무방비함을 느끼곤 했다. 그러나 그 모습은 언제나 다른 사람 앞에서였고 남자는 그들 눈앞에서 내려앚는 자신의 자존심을 무심하게 견뎌야 했다.적절할 이 없으나 그 순간을 돌아보는 건 여자의 마를 무시하고 싶을 때였다. (-163-)


소설가 유희란의 <사진을 남기는 사람>은 여덟 편의 단편 소설이 연결되어 있다. <밤하늘이 강처럼 흘렀다>,<유품>,<사진을 남기는 사람>,<천장지비>,<무람없이 그의 이마에 앉아 있었다>,<이제>,<호숙라 돌아오는 사막>,<셔츠>이다. 단편소설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하다. 자가의 의도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것에 대한 목적과 의미를 얻게 된다.소설가 유희란의 여덟 단편 소설 중에서 다루게 되는 단편소설은 <밤하늘이 강처럼 흘렀다>,<유품>,<사진을 남기는 사람>이다. 이 세편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을 때의 우리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가까운 누군가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의 끝자락에서 , 살수 없는 삶의 마지막 시간의 종착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의 항문의 기본 기능조차 상실되어, 인공항문이 대신하게 된다.몸은 망가졌지만, 정신은 말짱한 상태,그 안에서 인간이 가지는 오묘한 감정과 마주하게 된다.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을 다시 누군가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존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끄러움과 수치심, 자존감과 존엄, 삶의 근원, 죽음 직전에 결코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을 보여주어야 할 때 생기는 것은 나 스스로 추하지 않겠다는 의지에서 나타난다. 화자을 하고, 나에 대해서 공들이게 되는 것은 그래서다. 평소와 다른 그 모습,그 뒷면의 모습이 쓸쓸하다.그리고 그 마음이 내 마음을 젖실 때가 있다. 결코 소수의 가장 측근에게만 보여지는,나를 보호하는 보호자에게만 보여지는 은밀한 삶의 편린, 그것이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유품,그리고 유품관리사, 사람이 떠난 자리는 흔적이 남는다. 삶의 끝, 그리고 죽음, 사람은 사라졌지만, 사람이 든 자리는 여전히 온기를 담고 있었다. 사람과 사물들, 그 안에서 느끼는 것들, 말하지 않는 것들의 궁극에 다다르게 되고,내 삶을 반성하게 된다. 그리고 이 소설은 우리에게 삶의 극한에 다다르는 그 순간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삶과 죽음은 내가 직접 결정할 수 없지만, 추해지지 않는 것, 자신을 지키는 것, 그리고 내가 남겨야 하는 것을 알게 된다. 살아가고, 살아지는 것, 그리고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단편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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