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나비 - 황규관 신작 시집 K-포엣 시리즈 20
황규관 지음, 전승희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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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놓아주자

이제는 숲을 놓아주자
자동차로 가로막지도 말고 전기톱으로
관절을 자르지도 말고
이제는 숲이 스스로 심장을 낳도록
놓아주자 비바람이 머물도록 흔들리다
샘물이 되고 다시 그것이
수천 리를 흘러 바다가 되도록
이제는 숲을 인간에게서 놓아주자
가난한 마을을 위하여 놓아주자
곧 탄생할 수쿠리와 거친 손마디를 위하여
팔랑거리는 나비를 위하여
딱따구리의 부리를 위하여 놓아주자
이제는 숲을 놓아주자
커다란 책상으로 놓아주자
안락한 집으로부터 놓아주자
이제는 숲이 새로운 주인이 되게 하고
인간은 아둔한 숲의 백성이나 되자. (-13-)


호랑나비

장마가 끝나지 않는다 바다는 끓고
빙하는 놀라 주저앉고 대륙은 탄다

숲이 깊이 베어진 탓인가도 싶은데
반지하 방에는 곰팡이가 점점
밀림을 이루고 있다

마스크를 쓴채 소독제를 손에 
아무리 뿌려보아도 아직 폭로할 게 남은 것 같다
(이제 침묵은 악덕이고 아무 말이라도 해주기를 당신은 바란다.)
빗속에서 매미는 다 울지도 못한 채
길 위에 버려져 있는데

간혹 비가 그친 구름 사이로
가을 하늘 같은 노을이 아름답게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다

지구의 얼굴은 저토록 무한하다. (-48-)

시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오래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언제부터 시가 무엇이 될 수 있는지 혼자 걸을 때가 있다.이 혼자 걷기가 더 잦아질지도 모르겠고, 영영 걷게 된다고 해도 지금은 아무 두려움이 없다. (-72-)


시 그리고 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시가 우리의 삶을,우리 사회를 바꿔주기를 시인은 요구하고 있다. 소설이 가지지 못한 함축적인 메시지, 그 메시지를 시어 하나 하나에 담아내려는 시인의 의지가 도드라지고 있다. 우리의 삶,우리의 행복,우리의 가치와 존재를 탐구하는 시인에게 시어의 문장 하나 하하하나 씨줄과 날줄처럼 녂여서 , 하나하나 살아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시인의 존재에 대해서, 시를 쓰는 이유와 목적이 분명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시가 가지고 있는 강한 힘과,시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시가 가지고 있는 언어는 시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


시인은 그래서 지금 현실을 깊이 들여다 보고 있었다. 나를 위해서 살아가는 힘, 시가 가지는 강력한 힘에 대한 이해와 ,시를 통해서 느끼는 지금 현재의 삶에 대해 느낄 수 있었고, 과거, 현재,미래에 갇혀 잇는 우리에게 , 그 안에서 우리는 서로의 가치들을 알아가는 과정을 탐구하게 된다. 코로나 팬데믹에 대해서 쓰여진 <호랑나비>는 강하고, 깊게 채워져 있었으며, 내 삶에 있어서,강한 울림이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소독과 발열체크로 해갈되지 않는 우리 앞에 놓여진 현실,환경파괴와 기후 변화, 자연을 그대로 놓아주어야 하는 이유는 서로 살아가기 위함이다. 코로나 팬ㄷ에믹은 우리를 더 힘들게 하고, 빈자를 더욱 바닥으로 내몰고 있는 현실이다. 가난할 수록 , 반지하에 살아가는 이들일 수록 사회에서 외면하고, 주변 사람들이 외면하는 현실을 비추어 볼 때, 우리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바라 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으며,나의 가치,나의 기준에 대해서 하나 하나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낼 수 있다.


그래서 시인은 때로는 불편하다. 우리 사회의 불편함을 들여다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를 투영하는 것,나의 삶을 시를 통해서 투영하고, 누군가의 삶을 깊게 관찰하고, 그 안에서 얻으려 하는 것들을 하나 하나 채워 나가려는 강한 의지가 돋보였으며, 나의 삶,타인의 삶, 고통과 그리움,고독과 쓸쓸함을 시를 통해서, 그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게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리고 시인의 관찰과 경험을 시를 통해서, 우리가 쓰는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 속에 시에 대해서, 시어를 통해 나와 자연을 일치시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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