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충 - 김성규 신작 시집 K-포엣 시리즈 19
김성규 지음, 지영실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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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충

자신의 살을 파먹는 벌레가 있어 어떤 사람은 그 벌레를 애지중지하며 기르지 벌레를 위해 온갖 것을 먹어 벌레에게 품질 좋은 살을 제공하려고, 주인의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 벌레는 스스로 죽어 그래서 자살충이라 불리지. 충성스런 벌레잖아.벌레를 위해 술을 마시고 여자의 살을 맛보고 , 또 최고의 음식을 찾아다녀. 고급스러운 쾌락을 위해 음식과 책을 섭렵해. 자살충을 한번 키워보면 가난뱅이들까지 벌레에게 미쳐서 지랄하지 자기 몸 건사하지 못하는 놈이 자살충을 키우다니....그는 날마다 수척해져 그러나 벌렐르 버릴 순 없어 자살충만이 그를 사랑하고 이해하지 자살충 동호회에서는 서로의 자살충을 보여주며 그들은 현실을 잊는 거야 그 사람이 죽기 직전 사람들은 애도를 위해 혹은 자신의 건강을 확인하기 위해 몰려들어 최대한 애처로운 눈빛으로 누워 있는환자를 내려다보지 환자를 보는지 자살충을 보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가 죽으면 사람들은 일제히 눈물을 흘려 그런데 사실은 그 벌레를 가지기 위해 아우성치는 거야 정신이 가장 힘을 잃었을 때 살은 부드럽고 기름기 흐르는 연약한 육지로 바뀌지 자살추은 그런 살을 파먹는 것을 좋아해 죽은 자와 마지막 눈동자를 마주치는 순간 자살충은 그 사람의 눈동자로 옮겨가 또 다른 주인의 몸에 기생하며 목숨을 연명하지 잘 생각해봐 쾌락을 만끽하기 위해 사람들은 자살충을 키우는 거야 우리를 갉아먹으며 놈은 점점 비대해져 아무도 그놈을 꺼내 밟아 죽이려 하지 않아그런데 왜 사람들은 자신의 목숨을 갉아 먹는 그 벌레를 그렇게 사랑할까 수많은 자구에 뿌려놓은 정충보다, 나보다 더 끈질긴 생명력으로 놈은 영원히 살아갈 거야 우리의 살을 파먹으며 자살충은 자살할 기회를 잃어버려 그래서 자신에게 살을 내주는 주인을 영원히 저주하며 살지 (-15-)


아버지가 남긴 약을 먹으며

간암으로 병원에 다니시는 아버지
아침저녁 봉지를 뜯어 약을 드신다.
마저 먹지 못한 약을
나 먹으라고
봉지에 주섬주섬 챙겨 주신다

서울로 올라와 바로 잠들고
아침부터 여기저기 전화하고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퇴근하고 돌아와 약봉지를 본다

깜빡 약 먹는 것을 잊어버리고
자주 잠드신다는 아버지
건강에 좋은 거라고

이거 먹으면 술 먹어도 일찍 깬다고
나한테 주던 약봉지

허고으로 바람이 흘러가는 소리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
어릴 때 들리지 않던 소리
이제 조금씩 들리기 시작한다.(-51-)


바로 여기서 우리는 반지하 인간의 실존적 고통이 가난보다 자기부정에서 비롯한다는 생각을 얻게 된다. (-72-)


시 한 편을 읽게 된다. 1977년생 ,40대 시인 김성규는 기존의 시의 범주를 벗어나 미래가 아닌 현재를 그 현재가 투영하고 있는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이상향을 쫒기 보다 , 철저히 고통스러운 현실에 접근하고자 하는 의지, 따스한 행복이 아닌,온기가 있는 이상이 아닌 차가운 인간의 고통의 실존에 대해 깊이 들어가고 있었다.인간은 태어나 스스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성실하게 살아가지만, 김성규시인의 삶은 팍팍하고, 힘들었다. 나를 위해서, 견디면서 살아가는 것, 그것을 지키기에는,꿈을 키우기에는  이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그 고통을 견뎌야 하는 이유조차 모른채 견뎌내라하는 세상에 저항하게 된다. 나와 타자간의 화해를 거부하는 것,그것이 자살충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었다. 나의 살을 파먹는 자상충은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에 등장하는 그레고리 잠자를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그 자살충은 벌레이면서, 벌레가 아니었다.인간이 최종 선택하는 자살충동의 동이 빠진 나의 분신 자살충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누군가의 자살충으로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 스스로 내 살을 누군가에게 내줘야 한다는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인간과 바이러스 관계처럼 숙주가 있어야 바이러스가 살아남는 것처럼, 자살충에게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매개체가 가지고 있는 살이 사라지면, 먹을 수 있는 공간조차 사라지고, 죽을 운명에 처해지게 된다. 그것은 철저히 인간의 이분법적인 자아를 고스란히 나타내고 있다. 자신이 고통스러운 것은 부당하며, 타인이 고통스러운 것은 정당하다.그것이 우리 사회의 또다른 자살충을 확산시키고 있다자살추의 씨앗이 곳곳에 확산되고 있는 이유다. 어떤 자살충을 보면서, 슬퍼하고,위로하면서, 살아남는 이들은 자살충이 남겨 놓은 물질과 정신을 가지고 자기 맷속을 채워 나가고 있었다. 결코 스스로 부인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시집 <자살충>에서 암시하고 있었으며, 그 현실적인 가치 하나하나 느낄 수 있고, 상기시킬 수 있게 되었다.나의 삶을 성찰하고, 타인을 바라보았던 나의 삶의 모순과 위선들을 다시한번 들추게 되는 책 한 권이며,우리의 불편한 현실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었다.살아가지만 언젠가 나 스스로 자살충이 될 운명에 놓여지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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