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합법적 불공정사회 - 세상은 왜 공정해질 수 없는가? 법은 어떻게 우리 사회 불공정을 보호하는가?
우리사회정의 엮음 / 독서일가 / 2021년 1월
평점 :
'을'은 누구인가?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 혐오, 동성애 혐오, 장애인 혐오, 다문화 혐오 등 각종 혐오의 피해자가 되는 사람들, 즉 우리 사회의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들을 을이라고 한다. (-15-)
지금까지 우리의 민주화가 해놓은 일은 국민주권에 기반을 둔 민주주의를 세운 것이다. 물론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시대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 갑을 관계가 산출하는 폭력과 불평등 ,무시와 차별, 배제로 인한 문제들이 그런 것이다. 이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제기되는 민주주의와 저의의 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없다. (-21-)
오늘날 한국에서 18세 미만의 시민들은 정치적으로 보면 그냥 부재하는 존재들 일 뿐이다. 이는 그들이 자신을 대표할 수 있는, 따라서 자신들을 정치적 주체로 재-현할 수 있는 정치적 수단을 배제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44-)
이드라마에선 주인공 장발장의 범죄를 통해서 드러나는 법의 냉혹한 성격도 흥미롭다. 거기에 경감 자베르를 통해 드러나는 법권력 특유의 시각이 눈길을 끈다. 그의 시각은 어떤 '원리의 결여'를 보여준다. 그것을 '정의'의 문제와 연결 지어 생각할 수 있다.
먼저 공권력의 집행자인 자베르의 발언은 불리적으로나 이데올로기적으로 헤게모니를 쥔 지배계급이 (하층)민을 바라보는 통상적 시각을 반영하는 전형적인 발언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93-)
이런 입장이라면 갈등, 분쟁, 대립 이외의 다른 대안이 나올 수 없다.옳고 그름의 논쟁에선 답이 나오지 않는다. 실제로 내 입장에서 옳고 그름은 상대방 입장에선 그른 것과 옳은 것을 거꾸로 생각하는 것, 즉 옳음과 옳음의 대결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자신의 옳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135-)
들을 때는 상대가 그런 주장을 하는 속뜻과 마음을 헤아리려고 하고, 이해가 안 될 때는 비판부터 하지 말고 먼저 그 뜻을 물어보아야 한다. 또 자신이 말할 때는 가급적 자신이 그런 얘기를 하는 속뜻과 마음을 상대방이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결국 각자 다른 니즈들의 분출로 폭발하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절차적 정의란 다름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상대를 존중하는 대화의 방식에서 출발하는 것이라 하겠다. (-190-)
우리 사회는 갈등과 반목, 혐오와 차별이 만연하는 사회이다. 옳고 그름에 대한 명확한 기준 없이 ,나에게 원하는 것, 내가 지지하는 것과 일치하면, 맹목적으로 따르는 경우가 많고, 그른 것을 옳다고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그 단적인 모습이 이번 2022년 대선 경선 진행과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평소 도덕적으로 나쁘게 생각했던 정치인에 대해서, 어느 순간 찬양으로 바뀌고, 그름이 옳음으로 전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갑과 을의 관계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이유가 분명하게,여실히 드러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즉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을의 민주주의의 정착이 일어나기 위해서,우리 사회의 음지, 소수자를 위한 권리나 정책 구현, 정치 참여 유도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책을 읽으면서,내가 사는 지역에 시의회에서 중고등학교 교복 지원 조례 부결이 일어난 원인을 떠올리는 문장이 책 속에 있었다. 그건 시의회와 시의회 내부의 정치인들이 암암리에 정치 참여를 하지 않는 소수를 배제하고 있음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합법적 불공정 사회는 민주주의가 만든 법과 제도에 의한 절차와 원리에서 시작된다.그들의 선택과 결정이 설령 옳았다 하여도,그들이 어떤 조례를 부결한 것이 합당하다 하여도, 그건 실제로 잘못된 것이었다. 똑같은 예산을 적절하게 쓰지 않으려는 행동들, 내년 지방 선거를 앞두고, 투표권이 없는 이들의 기본 권리조차 소멸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책에서 엄급하고 있는 합법적불공정 사회의 한 단면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누구는 권리를 요구하고, 누구는 책임을 요구한다. 정작 소수자의 권리를 외면하기는 대한민국 사회 또한 거기서 벗어나지 않았다. 나를 위한 정치, 갑을 위한 정치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 정치 참여, 선거권이 나이를 낮춰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게 해주는 책이다.그리고 결정적으로 우리는 스스로 을의 위치에서 갑질을 한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갑이 을이 되고,을이 갑이 될 수 있다.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을의 민주주의'의 원칙이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