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시선 - 개정판
이승우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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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한 대로 반론이 돌아왔다. "없는 건 존재하지 않는 건데, 가까이 있든 멀리 있든 있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지.거리나 관계나 마찬가지지만, 가까이 있는 것은 있는 것이고, 멀리 있는 것도 있는 것이지 . 더구나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어떤 경우에도 부정되지 않는 것이 있는데, 아버지야말로 그런 존재지. 죽기 전에는 없어질 수 없다는 뜻이야. 어던 경우에는 죽어서도, 죽은 채로 있는 게 아버지지." (-34-)


어머니는 아버지의 존재를 상기시킬 만한 어떤 언행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아버지의 필요를 느끼게 하지도 않았다. 아버지 없이도 책임 있는 성인으로 성장해가는 데 아무 부족함이 없었다. 도대체 아버지의 무엇 때문에 필요하단 말인가. (-69-)


"한명재는 몰라도 한길숙은 모르지 않을 걸. 모를 수가 없을 걸. 아니 한길숙을 모르면 안 되는 거 아냐. 그렇지 않아?" 그말을 하는데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코끝에 싸한 기가 맴돌았다.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나는 눈물을 억누르기 위해 더 소리 질렀다."한길숙이 내 어머니란 말이야. 내 어머니라고! 나는 한명재고 내 어머니는 한길숙이란 말이야!" (-134-)


두렵고 불안한 '있음'보다 두렵지도 않고 불안하지도 않은 '없음'이 더 두렵고 더 불안했을 것이다. 병장은 어떤 처벌을 받게 되느냐는 내 질문에 김 중사는 손부터 내저었다." 처벌은 무슨.....아무 일도 없어.죽은 놈만 불쌍하지." 부대에서 일어난 사건 사고는, 사망자가 있을 때,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책임이 죽은 자에게 지워지고 마무리된다는 것이 그가 덧붙인 설명이었다. (-190-)


책을 읽으면, 예전 모 연예인의 죽음이 생각났다. 아버지가 있어도 아버지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살아있지만, 살아있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 ,어머니와 아들은 한쪽은 남편이라 부르고, 한쪽은 아버지라 부르는 ,그 사람의 존재감을 부인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륜이고, 천륜이었다. 살아있지만, 두사람에게 전혀 도움이 안되는 존재,아버지라는 존재가 바로 그런 존재였다. 기억에서 지우고 싶지만 결코 지워질 수 없는 그런 존재였다. 어머니 한길숙, 아들 한명재, 아버지를 죽이고 싶은 아들의 마음이 그대로 투영되고 있었다.그리고 그 기회는 꼭 찾아오게 된다. 출세를 위해서, 선거 운동을 하는 아버지, 그 아버지는 아들을 낳기 위해, 정자를 제공하기만 했지, 집안을 돌보지 않는 오로지 자신만 생각하는 그런 존재였다. 그래서 주인공은 아버지의 존재를 극구 부인하고 싶었다. 세상의 이치,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가치관에 위배될 수 있음을 주인공도 모르지 않았다.다만 아버지의 존재를 부인하면, 불행하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그렇게 하려면, 스스로 아버지의 존재를 지우는 것이 마땅하다. 그래서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고, 행동한다. 바로 불행의 씨앗을 아들의 선에서 끝내고 싶은 그 마음, 이 인생이 종지부가 되더라도, 어머니의 고토은 이어지지 않기를 바른 그 소박한 마음이 ,결국 일을 저지르게 되고, 그 일로 인해 여러가지 상황 반전이 일어나게 된다. 한 편의 소설이지만, 누군가의 삶이 될 수 있고, 누군가의 불행이 될 수 있으며, 누군가는 그로 인해 새로운 도약, 비약을 원할 수 있을 것이다.즉 이 소설을 읽고 난 감상평은 나의 불행을 결코,법과 제도,세상이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깊은 깨우침에 다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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