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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그리운 것은 시가 된다 - 서정윤의 어떤 위안
서정윤 지음 / 마음시회 / 2021년 7월
평점 :
뉴스의 그늘
하루살이는 하루만 사는게 아니다
짧게는 네 시간 사는 것도 있지만
보통은 이삼 일 살고
길게는 보름간 살아있는 것도 있다
하지만
하루만 산다는 위장의 이름을 달면
아무도 자신의 목숨에
관심 가지지 않을 줄 안 것이다.
건드리면 죽은 척하는 공벌레나
건들이기도 전에 죽어야지 라고 말하는
할머니보다
한 단계 높은 위장술이다.
저녁 어스름에 강변을 산책하다 보면
하루살이 떼의 공격을 받을 떼가 있다
그냥 모른척 하며
빨리 그 구역을 벗어나려고 할 뿐
살충제를 뿌려서 없애야 겠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살아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도
살아가는 것이 이다지 힘겹다
백년과 하루가 다를 것 없고
속았다는 느낌조차 없는 말의 잔치에
멍하니 빨려들어 가는 최면이었다. (-19-)
향연
눈은 새하얀 슬픔
그 아래
사랑을 숨긴다
세상의 삶과 죽음이
조이 한 장 차이고
사랑의 오해와 이해가
동전 앞과 뒤인데
말로 건널 수 없는
검은 강 앞에서
절망했다. 내 사랑은
오늘 나를 위해
커피 향을 피우기로 했다. (-69-)
사라짐에 대하여
살아있는 나날의 단풍이다.
어느 외로운 날 꺼내본 흑백사진이 손짓한다.
백이십칠만 년 전에 출발한 별빛이 내 이름을 알고
푸르게 굳은 웃음의 기침을 깨우고 있다
동사무소 앞에 나란히 펄럭이는 깃발도
외로움을 떨치지 못했다.
사막을 걸어온 낙타의 기억이 물 한 모금에 사라지고
선연한 아름다움에 대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껴 먹어야 했던 동화책과 시집에
눈물 묻는 거도 안타까웠다.
과장하지 않은 고민이
예정하지 않은 날에 업혀 살아간다.
살아있으니 다시 만나고
이 따스한 햇살 아래 설 수 있다.
입 안의 사탕처럼 여위어가는 하루하루가 아쉽다.
신작로 옆 매연 속에 살아가는 은행나무는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표정을 보이고 사라지는데
인간은 아름답지 않는 얼굴로 주름골을 판다.
모으기만 하는 개미와 벌을 탓하고 싶지 않지만
사는 삶인지 물어보고 싶었다.
아닌 길에 대한 믿음이 너무 강해
고개를 돌릴 수 없는 오류에 빠져
경전에서 번져 나오는 욕심과 주기도문을
돈으로 환산하는 빌딩에서
나만은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있다는
믿음이 바겐세일 잔치를 한다.
더 많은 영혼을 지옥의 문으로 안내해야
천국으로 갈 것이라는 믿음에
가면을 벗지 않았다.
퇴화된 날개뼈에서 깃털이 뽑혀지고
어떻게든 사라지는 것들의 허무 속에 포함되기로 했다. (-125-)
시인 서정윤님의 <모든 그리운 것은 시가 된다>는 우리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었다. 나의 삶과 사물의 삶, 또다른 미물에 볼과한 생명체의 삶, 그 하나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 자연은 인간의 죽음과 비인간의 죽음에 대해서, 무겁고 가벼움을 따지지 않는다. 단지 인간만이 죽음에 대해 가치를 두고,무거움과 가벼움을 논할 뿐이다. 살아가되, 죽음을 잊지 말라는 확언이 현실이 되었고, 그리움, 쓸쓸함,허무에 대해,삶과 죽음과 엮어낸다. 그리고 우리는 삶과 죽음은 백짓장 하나에 불과하다는 걸 시를 통해 투영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나의 행동 하나하나들이 삶과 죽음이 백짓장이라는 걸 알게 해준다. 내 앞에 아른 거리는 파리,모기, 바퀴벌레는 혐오동물처럼 생각하는 인간의 마음이 있다. 그것을 볼 때면, 반드시 정언명법처럼 파리채를 들어서 생을 종식시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강가에 있는 하루살이는 불빛을 좋아하고,사람이 모이는 곳에 하루살이가 있다. 실제로 하루살이는 하루만 살아가지 않았다.인간은 언어로 하루만 살거라고 하나의 틀에 가둬 버렸다. 그래서 때로는 공격하고, 때로는 폭력적이다. 시인 서정윤님의 텍스트에서 하나하나 시 구절이 내 살과 엮이게 되고, 내 삶에서 종교의 가치는 결국 삶과 죽음을 이해하고, 위로와 치유를 얻기 위항 구실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고 말랐다.결국 우리의 삶은 한순간이다. 그것이 어던 사고에 의해서든, 자연사에 의하든 변함이 없다. 다만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죽음의 가해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는다. 정작 내 앞에 놓여진 죽음 앞에서 자괴감,무기력함, 죄책감, 후회를 하면서, 그리움과 쓸씀함을 안고 살아간다. 결국에는 홀로서기를 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삶, 삶을 견디고 죽음을 견뎌야 하는 이유는 아주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