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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태양
마윤제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6월
평점 :
그날 밤 자려고 누웠던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일어났다. 강태호가 누군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내 꿈에서 무서운 힘으로 고래의 턱을 찢어 죽여버린 남자가 바로 강태호였다. 그가 왜 내 꿈에 나타난걸까. 그리고 내 이름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22-)
오상윤이 심각한 표정으로 카니발리즘을 설명했다.
"식인 풍습은 두 가지 의미가 있어. 사회적 행위로서의 식인과 단순히 먹기 위한 식인, 그중 사회적 의미가 중요햐." (-92-)
최호는 변태석의 중학교 친구였다. 한 때 그가 폭주를 시작하면 수백 명이 따라붙을 정도로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폭주족 리더였다. 작년까지 미친 듯 폭주하던 최호는 올해 들어서자 갑자기 폭주를 멈추고 바이크 가게에서 아르바이트에 몰두하고 있었다. (-170-)
"최한주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고 싶다는 말을 들으니 감회가 새롭구나. 이젠 네가 최한주의 지난한 삶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구나." (-218-)
어느날 오후, 변태석이 학교로 찾아왔다. 오랜만에 본 변태석의 얼굴은 여드름으로 인하여 분화구에 가까웠다.
"어쩐 일이냐?"
"그거봤어?"
"뭘?"
"올해 뱃고놀이 참여 선수 명단." (-274-)
윤주가 눈을 떳다. 퀭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꿈을 꾸는 듯 몽롱한 눈빛이었다. 그녀의 초점 잃은 동공을 바라보며 내 이름을 말했다. 윤주가 인상을 찡그렸다. 나를 알아봤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나머지 병실을 뒤지던 친구들이 319호실로 들어왔다.그들은 입을 다물고 나를 지켜보았다. (-328-)
소설 <8월의 태양>은 강주시 북항을 무대로 하고 있었다. 북항은 동해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항 주변에는 고래가 출몰하고 있다. 뱃사람에게 고래의 등장은 신비로움이면서, 로또였다. 1960년대 언저리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는 소설에서, 바다와 배, 그 안에서 삶과 죽음을 드리우는 뱃사람들의 찢어진 가난을 경험하였던 영찬은 아빠의 기억들을 더듬어 나가게 된다. 뱃사람이 되어서, 생존을 위해 사투한다는 것은 때로는 부질없는 일일 수 있다. 바다위에서 어떤 사고가 나서, 뱃사람이 죽게 되면, 자신의 가산 모든 것을 다 털어서 수습해야 하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어서다. 그 중심에 영찬과 영찬의 아버지가 있다. 영찬과 영찬의 아버지 최한주는 그렇게 서서히 자신의 삶을 내려놓고, 영차의 아빠 자리, 그 자리를 감태호가 차지하고 있었다.
조폭, 그리고 룸쌀롱,부자, 나이트클럽으로 상징되는 중년의 강태호는 영찬에게는 두려움의 상징이었고, 하나의 트라우마였다. 하지만 아직 성인이 안 되었던 이제 열둘 영찬의 결정과 선택권은 현존하지 않았다. 외로워도, 상처를 느껴도, 있는 듯 없는 듯 살아야 하는 영찬의 모습은 나약한 하나의 존재감만 제시되고 있었고, 영찬은 윤주를 통해 보상받고자 하였다. 서로 고통을 안고 살아야 했기에 서로 동질감을 느꼈고,위로와 상처를 어루만지게 된다. 소설은 그런 의도에서 상당히 폭력적이다. 나의 삶,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그들에게 물과 뭍은 일체감을 형성하고 있었다. 죽거나 살거나, 때로는 누군가에게 버려지거나, 하지만 영찬은 성장하면서, 아빠의 존재감을 찾고자 하였으며, 감태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고 싶은 독립적인 자아를 형성하고 있었다. 나에 대한 생각을 느끼며, 이 소설에서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돈과 자본의 힘,그들에게 뱃놀이와 배위에서,거대한 고래를 잡는 것은 스스로 생존의 기회이자 로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