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 오브 잇 - 즐거움을 향해 날아오르다
아멜리아 에어하트 지음, 서유진 옮김 / 호밀밭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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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나는 물리학과 화학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졸업하고 약 1년 후에 필라델피아 근처의 오곤츠 학교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마지막 학년이 되어 맞이한 크리스마스 휴일에는 세인트 마거릿 대학에 다니던 여동생이 있는 토론토에 갔다. 나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세계대전이 의미하는 바를 깨달았다. 새 유니폼을 깔끔하게 입은 군인들과 브라스 밴드 대신 내게 눈에 들어온 것은 4년간 처절한 투쟁의 흔적으로 팔과 다리를 잃거나 몸이 마비되고 시력을 잃은 남자들이 있다. (-34-)


결론적으로 조종사 빌 스툴츠는 2만 달러를, 정비사 루고든은 5천 달러를 받았다. 나는 보상금에 대해 그리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보상이란 그저 위업에 따른 즐거움 그 자체였다. 또한 대서양 횡단은 내게 비행할 기회를 열어 주었고 그 경험을 글로 쓸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비행에 관해 썼던 기사가 신문에 실리면서 공교롭게도 나는 모르는 사이 수수료가 우리 회사 재무부로 돌아왔다. (-91-)


날씨는 매시간 방송되지도 한다. 따라서 어쩐 조종사든 적절한 무전 장비만 갖추고 있다면 그가 비행하는 항로의 기상상태를 정확히 알 수 있다. 그가 듣는 방송을 땅에서도 들을 수 있다. 텔레타이프와 다리 구두로 방송되기 때문에 관련된 사람들이 쉽게 들을 수 있도록 소리를 크게 높여 스피커를 통해 송출할 수도 있다. (-166-)


가장 처음 비행 교통면허증을 발급받은 여성은 피비 오밀리에이다. 그녀는 1920년부터 낙하산 점퍼와 윙워커로 비행 경력을 시작했으며 1921년 7월 10일 여성 비행 고도 기록을 깼다. 그녀는 11년의 비행 경력을 가지고 세계대전에 참여했던 남편 오밀리에 대위와 함께 테네시주 멤피스 남부에서 가장 큰 비행학교인 미드 사우스 에이웨이를 설립했다. (-245-)


우리가 가장 잘 알려진 광고에 나와 있는 문구인 'airplane will pretty well cover the earth'처럼 비행기로 갈 수 없는 곳은 없을 것이다. (-289-)_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 여행을 하고, 좀 더 먼곳 태평양 너머 미국으로 여행할 수 있다.뱃길로도 갈 수 있고, 비행기 길로 나아갈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여행의 진면목을 발경할 수 있다.그렇다면, 시간을 돌려 100년전 우리의 삶을 돌아보자. 1907년 당시 헤이그 특사는 아무나 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국가의 운명을 걸고, 특정한 이들이 ,고종의 칙령에 따라서 움직이며, 지금처럼 나라와 나라 사이를 하루만에 간다는 건 언감생심이다.그만큼 교통 환경 인프라가 좋아졌고, 비행의 속도도 빨라졌다. 이 책을 쓴 아멜리아 에어하트처럼 20시간 비행을 한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고 시행한다는 것이다. 비행기 속도가 지금처럼 빠르지 않았던 그 시절, 무전기에 의존한 채, 그 날씨를 예측하고, 기상상태를 실시간으로 들으면서, 비행하게 된다.아멜리아가 특별한 이유는 여기에 있었으며,지금처럼 정식으로 학교에서 비행 실습이나 정비교육을 받을 수 있는 교육기관이 없었던 그 당시에는 특별한 이들의 전유물이다.책은 그녀의 에세이로서, 자서전 성격을 지니고 있다. 비행을 즐기는 것,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은 아멜리아 에어하트의 도전은 라이트 형제의 업적에 버금갈 정도로 특별한 일이며, 지금 현재 비행사가 아닌 우주 여행사를 꿈꾸는 소녀라면, 이 책은 그들에게 용기와 꿈,희망을 가질 수 있다. 비록 아멜리아는 1937년 남태평양에서 실종되었지만, 그녀의 삶은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으며,위대한 여성 비행조종사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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